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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ㆍ경북 사람은 아프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 백병원 사태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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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ㆍ경북 사람은 아프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 백병원 사태 딜레마

입력
2020.03.10 01:0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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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대형병원서 진료 거부당한 환자, 절박함에 거주지 거짓말 

 병원에 매뉴얼 못 내놓는 정부 “거짓진술ㆍ진료거부 처벌”만 강조 

서울 대형병원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부터 병원을 지킨다는 이유로 대구ㆍ경북에서 상경했거나 해당 지역을 방문한 환자들의 진료를 거부 혹은 연기하고 나섰다. 문제는 이러한 자구책이 대구ㆍ경북 환자들에겐 사실상 진료거부로 비친다는 점이다. 환자들이 진료를 받으려고 이 지역 거주자임을 숨기기 시작하면 오히려 대형병원들이 신종 코로나 감염자를 가려내기 어려워진다. 하지만 정부는 이러한 딜레마 앞에 명확한 매뉴얼 한 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저 “환자들은 거짓말을 하면 안 되고, 병원은 정당한 이유 없이 진료를 거부하면 안 된다”는 원론적 입장만 거듭 밝힐 뿐이다. 결국 피해는 원하는 병원에서 치료받지 못하는 환자, 그리고 진료 거부로 맞서야 하는 병원들에 돌아가는 상황이다.

9일 오전 대구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지역거점병원인 계명대 대구동산병원 비상대책본부에서 간호사가 어깨를 주무르고 있다. 연합뉴스
9일 오전 대구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지역거점병원인 계명대 대구동산병원 비상대책본부에서 간호사가 어깨를 주무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8일 대구 거주 환자를 받아주는 병원이 없어 결국 대형병원이 마비되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이러한 딜레마가 걱정스러운 모습을 드러냈다. 서울시내 모 대형병원으로부터 진료를 거부당한 대구시 거주자 78세 여성 A씨가 출신지를 서울로 둘러대고 서울 중구 서울백병원에 입원했다가 닷새 만에 신종 코로나 확진판정을 받으면서 병원 응급실과 병동이 폐쇄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A씨는 대구에 거주하다 지난달 말 상경해 마포구 딸의 집에서 지냈다. 3일 구토 등 소화기 관련 증상 등을 보여 서울의 대형병원에 예약했으나 기존 기록에 드러난 거주지 정보 때문에 진료를 거부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그는 동네의원에서 진료를 받았으나 장비가 없어 대형병원 진료가 꼭 필요한 상황이었다. 결국 A씨는 이날 백병원을 찾았고 거주지를 마포구로 속이고서야 입원할 수 있었다. 입원 중에도 의료진이 여러 차례 대구 방문력을 물었으나 A씨는 그때마다 부인했다. 그는 7일에야 신종 코로나 검사를 받았고 다음날 오전 확진판정 사실을 전달받고 나서야 대구가 실제 거주지이며 다니던 교회의 부목사가 확진환자라고 털어놨다.

백병원이 신종 코로나에 무방비로 노출된 가장 큰 책임은 물론 거짓말을 한 A씨에게 있다. 그러나 A씨가 거주지를 속이면서까지 입원한 이유는 앞서 방문했던 대형병원에서 진료를 거부당해서다. “갈 곳이 없다”는 절박감이 사태를 키웠다는 분석이 많다. 실제 ‘빅(BIG) 5’라 불리는 국내 대형병원들마저 당장 긴급한 처치가 필요한 중환자가 아니라면 대구ㆍ경북 환자의 진료를 최대한 미루는 방침을 시행하고 있다. 신촌세브란스병원 관계자는 “약을 받아야 하는 환자들은 주변 의원으로 가라고 권유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뾰족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현행 의료법과 감염병 예방법은 의료진에게 거짓으로 진술하는 환자와 정당한 사유 없이 지역만을 이유로 진료를 거부하는 병원 모두 처벌하도록 하고 있어 사후에 불법이 확인되면 처벌하겠다는 원칙만 강조할 뿐이다. 9일 김강립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1총괄조정관(보건복지부 차관)은 “거짓 진술 환자에 최고 1,000만원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 “진료를 거부한 병원에 행정력을 동원할 수 있다”는 점을 동시에 밝혔다. 그는 이어 “병원협회와 협의해 조화와 균형을 맞추겠다”는 식의 구체적이지 못한 해법만 제시했다.

전문가들은 대형병원들이 최대한 대구ㆍ경북 환자들을 진료하도록 정부와 의료계가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고, 동시에 환자들의 이타적인 태도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재갑 한림대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대구 환자인데 진료가 급하다면 일단 1인실에 격리하고 보는 방법도 있지만 보험급여 문제 등 복잡한 부분이 많아 병원들 입장에선 급하지 않은 환자는 피할 수밖에 없다”면서 “환자들도 양해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지역을 앞세워 치료받을 권리를 막아서는 게 부당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일부 환자의 잘못 때문에 전체 환자들이 피해를 볼 수 있는 상황이 우려된다”라며 “신종 코로나의 영향을 받고 있는 다른 중환자들이 특별히 뭘 더 해달라고 하는 상황도 아닌데 진료에 있어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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