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전 6시 30분 노량진 학원가. 학원 앞에 선 버스에서 수험생들이 줄줄이 내렸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각종 시험을 얼마 남겨 두지 않은 ‘파이널 기간’. 하지만 코로나19 때문에 시험은 연기됐다. 그렇다고 수험생들까지 사라지지는 않았다. 학원가 뒤편 카페에 수험생들이 잠을 깨워줄 모닝 커피를 주문하기 위해 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은 보통의 노량진 아침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근처 ‘담배 거리’라 불리는 골목에서는 수험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정모(25)씨는 “사람이 (코로나 19때문에) 빠지긴 했는데 그래도 여전히 꽤 많다”며 “예전에 100명이 왔다면 지금은 80~90명 정도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공무원 지망생 이모(28)씨도 “내가 다니는 학원은 수험생들이 거의 다 출석했다”고 했다.
“마스크 쓰지 않으면 학원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사실 일부 학원들은 당분간 문을 닫아달라는 교육부의 요청에 따라 수험생들 사이의 코로나19 감염을 막기 위해 강의를 중단하고 건물 전체를 폐쇄하기도 했다.
하지만 상당수 학원들은 여전히 문을 열고 있고 수험생들도 노량진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그렇다고 문을 연 학원들도 코로나19에 대한 걱정을 하고 경계심을 낮출 수는 없는 노릇. 확진자가 발생하기라도 하면 그 학원은 정상 운영이 어려워질 뿐만 아니라 확진자는 물론 접촉자도 시험 응시 자격 자체가 박탈되기 때문이다. 바이러스 감염을 막기 위해 평소에 볼 수 없던 조치들을 진행하면서 ‘조심 또 조심’ 분위기 퍼져 있었다.
노량진 학원가에서는 코로나19 초기부터 학생들에게 마스크를 꼭 써야 한다 당부했다. 그러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2일부터 마스크를 안 쓰면 학원에 들어갈 수 없게 했다. 예외는 없었다.
이날 아침 학원 앞에 도착해서야 마스크를 집에 두고 온 사실을 알게 된 수험생 김모(23)씨는 학원을 뒤로 한 채 주변 카페로 발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는 “가방에 넣어뒀다고 생각했는데 학원 앞에 와서 보니 집에 놓고 왔다”며 “마스크 때문에 학원 강의를 못 듣는다는 게 지나친 것 같지만 전체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지 않나”라고 했다. 김씨는 하루 수강료 7,500원에 학원 대신 근처 카페에서 공부하다 점심 먹고 오후에 또 다른 카페를 가는 비용(5,000원*2=1만원)까지 감안하면 2만원 넘는 추가 비용이 들게 생겼다고 아쉬워했다.
노량진역 6번 출구 앞의 또 다른 학원은 건물 입구에 열 화상 카메라를 설치했다. 손 소독제의 경우 엘리베이터 앞, 복도, 창문 틀 등 잘 보이는 곳에 두고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게 했다. 물론 수험생이 많이 이용하는 교실 앞 손 소독제는 금방 바닥이 드러났다.
강사들을 위한 대책도 눈에 띄었다. 수 백 명의 수강생 앞에서 강의를 해야 하는 대형 강의 강사들은 현실적으로 마스크를 몸에 달고 강의하기 쉽지 않다. 이를 고려해 한 학원은 하나의 마이크를 여러 강사가 공유하지 않고 강사 별로 개인 마이크를 나눠주고 강의실 스피커에 연결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물론 이런 대비도 수험생들이나 강사들을 안심시키기에는 모자란다. 강사 송모(44)씨는 “대형 강의실에서 수 백 명 학생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모습을 보며 강의를 하다가 나도 모르게 오싹할 때가 있다”라며 “한 명이라도 (코로나19에) 감염이라도 되면 큰 일 난다는 생각에 강의 가는 것도 찜찜하다”고 전했다.
스터디 카페·독서실은 알아서 조심하는 방법뿐
그 나마 큰 학원들은 대비라도 하지만 수험생들이 많이 찾는 스터디 카페와 독서실은 더 걱정이다. 이들 장소가 코로나19의 안전 지대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서모(27)씨는 “학원 주변 독서실은 여전히 수험생들이 많다”고 전했다. 한 프리미엄 스터디 카페는 약 66㎡(20평) 가량의 공간에 60개의 책걸상을 배치해 놓았다. 발열 증상이 있는 학생의 출입을 제한한다는 공지는 붙어 있었지만, 입구에서는 체온 측정기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스터디 카페 문 안으로 마스크를 쓴 채 공부하고 있는 수험생들을 수 십 명 볼 수 있었다.
독서실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2월 마지막 주 학원들이 한꺼번에 임시로 문을 닫기로 결정을 한 이후부터 독서실에서 공부를 시작한 곽모(24)씨는 “이 독서실은 개인이 운영하는 곳이다 보니 입구에 열화상 카메라도 없고 소독에 철저한 곳은 아닌 것 같다”라며 “할 수 없이 손이 닿는 책상이나 벽면 그리고 앉는 자리까지 알코올 소독제를 가져와서 직접 소독한다”고 말했다. 수험생 송모(31)씨도 “학원들이 갑자기 휴강하면서 독서실로 사람들이 많이 몰렸다”면서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다 보니까 감염이 좀 걱정이 되긴 하지만 그렇다고 공부를 안 할 수는 없으니 어쩔 수 없다”라고 설명했다.
점심도 거르고 마스크 구하기 전쟁에 참전
점심 시간이 시작된 낮 12시 30분. 노량진 거리에서는 생소한 광경이 펼쳐졌다. 평소대로라면 식당에 모여 있을 사람들이 약국 앞에 우르르 몰려 든 것이다. 한 블록을 사이에 둔 두 약국 앞에는 각각 수 십 미터 길이의 줄이 생겼다.
공적 마스크가 들어왔다는 소식이 수험생들 사이에 퍼지면서 많은 사람이 찾아왔다. 수업을 마친 수험생들은 점심을 먹기 위해 학원에서 나오다가 약국 앞에 사람들이 줄 서 있는 것을 보고 급하게 대열에 합류하기도 했다. 조금이라도 빨리 마스크를 사기 위해서 횡단보도 신호가 끝나기가 무섭게 100㎙ 달리기 하듯 뛰어 오는 수험생도 있었다.
‘마스크 5부제’ 시행을 앞둔 마지막 평일인 이날, 신분증을 확인하며 마스크를 두 장씩 살 수 있다 보니 줄을 서면 30분 넘게 기다려야 했다. 줄을 서는 내내 두 장밖에 사지 못한다며 걱정하는 수험생들도 보였다. 마스크를 사고 약국에서 나온 김모(27)씨는 “마스크가 없으면 퇴실 조치 되는데 그렇다고 학원에서 마스크를 따로 준비해주는 건 아니기 때문에 사러 나왔다”고 말했다.
한 시간 만에 마스크가 모두 팔리자 마스크를 사지 못한 수험생들은 서둘러 길 건너편 약국의 마스크 대열에 끼어들었다. 마스크를 사기 위해 기다리던 이모(22)씨는 “다음 주부터 일주일에 마스크를 정해진 요일에만 2장씩 살 수 있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다”며 “2장이면 일주일을 넘기기에 부족해서 사러 나왔다”고 했다.
마스크를 구하지 못하면 사용한 마스크를 계속해서 써야 하고, 고시원에 혼자 살기 때문에 누구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이 스스로 마스크를 구해야 한다는 이들도 많았다. 그렇다고 학원 강의를 안 듣고 마스크를 구하러 이리저리 떠돌며 시간 낭비할 수 없으니 그냥 마스크 대란의 부담을 고스란히 지게 된 것이다.
인강보면 될 텐데 노량진으로 갈 수밖에 없다. 왜
사실 여러 학원들이 ‘사회적 거리 두기’ 차원에서 인강(인터넷강의)을 제공하고 혼자서 진도를 따라갈 수 있게 하고, 현장 강의를 온라인 강의로 대체하는 식으로 굳이 학원에 나오지 않아도 되도록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험생들은 왜 노량진으로 돌아올까.
무엇보다 학원에서 제공하는 인강은 시험을 앞둔 수험생들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경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정모(25)씨는 “(학원마다 다르지만) 현장 강의가 인강으로 완전히 대체되지 않는다”며 “실시간 강의는 들을 수 없고 녹화 방송처럼 이미 수업한 강의만 올라와 복습만 가능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국가직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김모(27)씨도 “강사들로부터 피드백을 바로 받기 위해 현장 강의를 들으러 나올 수밖에 없다”고 했다. 심지어 6개월 이상의 프리미엄 수강권을 구매한 수험생에게만 인강을 제공하는 학원도 있었다.
다른 수험생들은 노량진을 대신해 갈 곳이 없다며 하소연한다. 서모(27)씨는 “노량진이 특별히 (코로나19에) 위험한 지역이라는 생각은 안 든다”며 “시험 때까지 페이스를 유지하기 위해 원래 해오던 대로 계속 (노량진에)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 공무원 시험을 앞두고 있는 김모(23)씨는 갑자기 혼자 집이나 카페에서 혼자 공부하려니 적응이 너무 안된다고 했다. 혼자 있을 때는 보고 싶은 친구들과 연락이 한 번 시작되면 반가운 마음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게 된다. 그러나 학원에서 공부할 때는 핸드폰을 마음대로 만질 수 없다. 학원에서 수험생에게 배정해준 담임 선생님이 면학 분위기와 개인 생활 태도를 모두 관리하기 때문이다. 김모(23)씨는 “학원에서 핸드폰을 할 경우 화면 빛에 방해를 받는 옆 사람 혹은 뒷사람이 담임에게 컴플레인을 제출하기 때문에 핸드폰을 쉽게 만질 수 없어 집중이 된다”고 했다. 이미 노량진에 깔린 긴장감에 적응한 수험생들은 선뜻 노량진을 떠나기 어렵다.
시험 미뤄진 만큼 늘어나는 학원비, 방값은 어쩌나
지난 4일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오는 28일 계획된 국가직 공무원 9급 공채 선발 필기시험은 5월 이후로 잠정 연기됐다. 앞서 인사처는 지난달 29일 예정됐던 국가직 5급 공채, 외교관 후보자 선발 1차 시험, 지역인재 7급 수습직원 선발 필기시험을 4월 이후로 미뤘다. 경찰공무원과 소방공무원 채용시험도 코로나19 확산 추이를 고려해 5월 이후로 연기되면서 수험생들은 정확한 시험 날짜조차도 모르게 되었다.
시험이 연기되면서 자동으로 시험까지 남은 수업 차수가 늘어나게 생겼다. 시험 3주 전부터 시작하는 ‘파이널 특강’이 미뤄지면서 수업 커리큘럼도 꼬였다. 한 학원에서는 붕 떠버린 기간을 문제 풀이 수업과 자습 시간으로 채워 넣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서모(27)씨는 “학원도 아직 상의 중이라고만 하더라”며 “아직 커리큘럼이 결정되지 않아 시험을 준비하기 막막하다”고 답답해 했다.
특히 지방에서 올라온 수험생의 경우 시험이 미뤄지고 노량진에서 머물러야 하는 날 수가 늘어나게 되면서 생활비와 월세 부담도 커졌다. 정모(25)씨는 “학원비도 부담되지만, 부수적으로 드는 게 더 많다”며 “제주도에서 올라와 같이 공부하는 친구는 시험이 연기된 후 월세도 식비도 문제라며 걱정을 많이 한다”고 전했다.
지방직 공무원 준비생 이모(22)씨는 “자취를 하니 추가로 들어갈 비용이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이모 씨가 노량진에서 한 달 더 생활하게 될 경우 월세 50만원과 식비 45만원(고시 뷔페 기준)이 추가로 든다. 학원비 약 25만원(4달에 90만원)까지 감안하면 한달 간 약 120만원의 기본적인 생활비가 들어간다. 추가로 독서실까지 다닌다면 약 15만원(4주 이용권 기준)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문 열고 닫기가 반복되면서 지쳐가는 수험생들
지난 달 24일 점심 시간 노량진 학원들은 수강생들에게 긴급 알림 문자를 보냈다. 건물 전체를 오후 2시부터 일주일 동안 폐쇄한다는 내용이었다. 갑자기 문을 닫는다고 하자 수험생들은 허겁지겁 점심을 제대로 먹지도 못한 채 학원으로 돌아가야 했다. 일주일 동안 학원에서 공부를 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에 개인 사물함에서 서둘러 교재와 개인 물품을 챙겨야 했기 때문이다.
가장 두꺼운 기본서부터 기출 문제집, 요약서, 정리 노트 그리고 독서대까지 사물함 하나를 가득 채웠던 물품을 챙기는 것은 쉽지 않았다. 김모(23)씨는 “학원으로 돌아와 사물함에서 짐을 꺼내던 광경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긴급 휴원 공지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7일 또다시 수험생들은 긴급 휴원 공지를 받았다. 정부가 사설 학원에 강도 높은 휴원 권고를 반복하자 학원은 급하게 문을 닫기로 결정했다. 학원 측은 당장 일주일이 예정됐지만 상황에 따라 기간이 연장될 수도 있다고 알렸다.
다음 날인 8일 수험생들은 수업이 끝나고 교재와 짐을 챙겼다. 지난 공지 때 같은 상황을 한 번 겪어본 학생들은 작정한 듯 캐리어를 챙겨와 교실 뒤편에 모아두기도 했다. 무거운 짐을 눌러 담은 뒤 학원에서 나온 수험생들은 또다시 스터디 카페와 독서실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19 때문에 반복되는 휴원과 기약 없이 연기된 시험 일정에 노량진의 수험생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누구 하나 뾰족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는 상황에서 수험생들의 걱정만 커져 간다. 취업 스트레스에 감염의 불안감과 경제적인 부담까지 더해지면서 노량진의 청춘들은 삼중고를 겪고 있다.
글·사진=이태웅·이혜인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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