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박근혜가 추앙 받던 시절 그가 가장 경멸한 게 ‘자기 정치’였다. 인의 장막으로 불렸던 측근 김무성ㆍ유승민 의원을 내친 것도 그 때문이다. 두 의원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때 박근혜를 돕는 과정에서 공교롭게도 그의 비민주성을 실감했다. 오죽하면 김 의원이 “박근혜가 가장 잘 쓰는 말이 ‘하극상’과 ‘색출’이다”라고 토로했을까. 유 의원은 2012년 4월 인터뷰에서 당 비상대책위원장이던 박근혜를 가리켜 “다양한 의견을 듣지 않는다”고 했다가 노여움을 사 결국 사이가 멀어졌다.
□ 박근혜는 대통령이 되고 난 뒤 진짜 자기 정치를 시작한 두 사람을 ‘비박’으로 내몰았다. 김 의원은 청와대가 밀었던 서청원 의원을 제치고 새누리당 대표에 당선되면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다. 박 전 대통령은 여당 대표에게 단 한번도 전화를 하지 않는 것으로 신호를 대신했다. 원내대표 때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며 대놓고 정부 노선을 비판한 유 의원은 아예 당직에서 끌어내렸다. ‘자기 정치는 배신’이라는 낙인과 함께.
□ 재판에도 나오지 않던 박 전 대통령이 옥중에서 편지를 내놨다. 대구ㆍ경북(TK)의 코로나19 확산세를 걱정했고, 문재인 정부를 사실상 “무능하고 위선적이며 독선적”이라고 비판했다. 지지층을 향해선 “거대 야당을 중심으로 하나로 힘을 합쳐달라”고 호소했다. 그를 잘 아는 인사들은 “시점도, 내용도 면밀하게 고려된 정치 행위”라고 말한다. 그의 정치 감각은 본능적이라는 것이다. 김형오 미래통합당 공천관리위원장의 컷오프 칼날에 탈당도 불사하려던 TK 의원들과 ‘태극기당’으로 총선을 치르려던 서청원ㆍ조원진 의원의 자유공화당 세력까지 잠잠해진 게 그 효과다.
□ 박 전 대통령이 이렇게 된 건, 그 정치 본능이 그가 입에 달고 사는 ‘국민’이 아니라, 철저히 자기 생존을 향했기 때문이다. 옥중에서까지 반문(재인) 결집을 호소한 이유의 끝엔 무엇이 있을까. 보수가 총선에서 1당이 되면 사면권을 가진 문재인 대통령이 더욱 정치적 압박을 느낄 거라고 보았기 때문 아닐까. 나아가 차기 대선에서 정권 교체 가능성 역시 높아지리라는 생존 본능에서 나온 계산 아닌가 말이다. 그러니 그의 편지를 ‘보수 재건을 위한 옥중 정치’로 포장하는 건 과하다. 그는 자기 살 길만 찾는 이기적 정치를 하고 있을 뿐이다.
김지은 논설위원 lun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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