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ㆍ제일모직 합병 부당 개입”
엘리엇 주장 뒷받침…우리 정부 압박
우리 정부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간의 투자자ㆍ국가소송(ISD)과 관련해 미국 정부가 중재판정부에 자국 회사 주장을 뒷받침하는 내용의 의견서를 직접 제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은 소송 상대방인 우리 정부에 상당한 압박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미국 국무부는 지난달 7일자로 ISD 중재판정부에 ‘국민연금공단의 행위가 대한민국에 귀속된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제출했다. ISD는 해외 투자자가 상대국 제도 등으로 피해를 봤을 때 국제 소송을 통해 손해배상을 받는 제도다.
앞서 엘리엇은 한국정부가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공단을 압박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부당하게 개입했다며 2018년 ISD를 제기했다. 문재인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의 합병찬성 결정을 ‘적폐’로 규정한 데 이어,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이 공단을 압박한 혐의로 기소되자 박근혜정부의 위법행위를 문제 삼아 ISD를 제기한 것이다.
미국 국무부는 11쪽 분량의 의견서에서 “국영기업과 같은 비정부기구는 본질적으로 국가로부터 위임 받은 권한을 행사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연금공단이 정부는 아니지만 정부에서 위임 받은 권한을 행사하기 때문에 공단의 행위에 대한 책임은 정부에도 있다는 취지로 엘리엇 측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미국 정부가 소송에 개입하는 것은 자국 기업을 보호하겠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우리 정부에 대한 압박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게 법조계 분석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송기호 변호사는 “미국 정부가 이 사건에 얼마나 큰 관심을 갖고 있는 지, 자국 기업이 원하는 방향으로 해결되길 바라는 의지가 얼마나 강력한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중재판정부가 절차명령에 따라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논의한 국민연금공단 회의록과 국정농단 수사ㆍ공판기록을 제출하라고 요구한 것에 대해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중재판정부의 요구를 무조건 따라야 하는 건 아니지만, 거절 시 소송에서 명백하게 불리해질 수 있어 법무부는 최근 관련 자료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송기호 변호사는 이와 관련해 6일 법무부에 중재판정부가 제출 요구한 수사기록 ‘특정문서’ 목록의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송 변호사는 “수사기록의 경우 법원에 제출되기 전까진 사건당사자도 자신이 진술한 것 외에는 볼 수 없다”며 “법원에 제출된 것이라 해도 피고인 측에만 방어권 보호차원에서 공개하는 것이기 때문에 제3자에게 공개하는 건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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