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전 미국 연수생활 중 한동안 적응 못 했던 시스템이 있다. 차에서 내리지 않고 이용하게 돼 있는 드라이브 스루(drive-thru) 시스템. 국내에도 일부 도입돼 있었으나 굳이 이용할 일이 없었다. 하지만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않은 미국에서 이 시스템은 요긴했다. 드라이브 스루로 햄버거와 커피를 주문한 것은 물론이고, 차를 탄 채 자동인출기(ATM)를 이용헸고, 도서관에서도 차에서 내리지 않고 책을 반납했다. 그 편리함에 무릎을 치면서 2억7,000만대의 차가 굴러다니는 ‘자동차 왕국’ 답다는 생각을 했다.
□드라이브 스루 시스템은 1930년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의 그랜드 내셔널 뱅크에서 처음으로 도입됐다. 첫 드라이브 스루 음식점은 1947년 미주리주 스프링필드의 ‘레드의 자이언트 햄버거’. 현재 미국에는 21만개 이상의 드라이브 스루 레스토랑이 운용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최근에는 인공지능(AI) 종업원이 날씨ㆍ시간ㆍ트렌드에 따라 운전자에게 메뉴를 추천하는 시스템까지 도입되고 앱 주문 운전자 전용 진입로가 등장하는 등 기술 발전에 따라 드라이브 스루 시스템은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국내에 드라이브 스루 시스템이 등장한 지도 30년이 넘는다. 1986년 개장한 켄터키프라이드치킨(KFC) 서울 방배동 매장이 그 효시인데 1992년 미스터피자와 맥도널드가 뒤이어 이를 도입했다. 유통업계에서는 1989년 롯데백화점이 추석 때 한시적으로 선물용품 드라이브 스루 시스템을 도입한 게 첫 사례로 꼽힌다. 현재 국내 맥도널드 매장 410곳 중 절반 이상(248곳)이, 스타벅스 매장(1,300개소) 중 5분의 1가량(240개소)이 드라이브 스루로 운영되는 등 차차 정착 단계에 들어가고 있다.
□ 코로나19 의심환자의 급증으로 진단에 어려움을 겪던 지자체들이 드라이브 스루 형태의 선별진료소를 운영해 해외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달 대구 칠곡의 경북대병원에서 운영이 시작돼 현재는 경기 고양시, 세종시, 서울시 등 전국 50여곳에서 이런 형태의 진료소가 운영 중이다. 대기 중 감염 가능성을 낮추고 진단 시간을 크게 단축시킬 수 있어 그 숫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 영국 런던 등에서도 이런 진료소가 등장하고 있으니 회수(淮水)를 건너온 귤이 탱자가 아닌 귤로 자라 회수를 다시 건너간 경우라고 할 수 있을까.
이왕구 논설위원 fab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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