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화면이나 자막 제공해도 농인은 이해 어려워
특히 재난 상황 시 사회적 약자의 정보 접근성 개선해야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정부 브리핑 보도와 관련 수어통역이 방송사나 전달하는 매체에 따라 일관성 없이 제대로 제공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가인권위원회와 장애인 단체가 잇따라 개선을 촉구했지만 개선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 재난 상황 시 사회적 약자의 정보 접근성에 대해 더욱 관심을 기울어야 할 때라는 지적이다.
6일 오전 각 방송사들의 코로나19 관련 지방자치단체나 중앙방역대책본부 등의 브리핑 실시간 보도를 보면 KBS와 YTN, 연합뉴스TV는 화면에 발표자와 수어통역사를 나란히 배치하고 있었다. 반면 MBC와 SBS 등은 발표자를 클로즈업한 채 오른쪽 아래에 작은 원의 형태로 수어통역을 제공했다.
브리핑을 실시간으로 송출하지 않고, 뉴스에서 브리핑 화면을 요약 보도할 경우에는 대부분의 방송사들이 발표자만 화면에 비춘 채 자막만을 제공하고 있다.
TV가 아닌 방송사들이 유튜브 채널에서 수어통역 제공은 더욱 들쑥날쑥하다. MBC의 경우 발표자만 비추다가 수어 통역사를 함께 비추기도 하고, SBS는 아예 자막도 없이 발표자 화면만 방송했다.
우선 작더라도 수어통역을 제공하거나 자막을 보여주면 되는 것 아니겠느냐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이는 농인들이 수어통역이나 자막을 이용하는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오는 얘기라는 지적이다. 우선 화면 내 수화통역의 크기는 일반인에게는 볼륨의 크기와 같다. 즉 작은 화면은 일반인에게 볼륨을 낮추는 것과 같아 이해하기 불편하다는 얘기다. 더욱이 어릴 때부터 수어가 익숙한 농인의 경우 수어와 줄글 문장 사이 언어체계가 다르기 때문에 한글에 대한 인지도가 낮아 파악이 일반인보다 상대적으로 어렵다고 한다.
수어통역사 배제한 채 뉴스 편집 관행 지속
앞서 지난해 말 문화체육관광부는 부처 정례 브리핑과 국무회의 결과 등 정부 발표와 재난 현장, 국경일, 정부 기념일 행사 등에 수어통역을 제공한다고 밝혔지만 정작 이번 코로나19 관련 브리핑에서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은 지난달 3일 정부 브리핑 등에 수어통역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아 청각장애인들의 안전권과 정보 접근권이 침해된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차별진정을 제기했고, 정부는 4일 브리핑부터 수어통역사를 배치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정부의 브리핑을 송출하는 각 방송사들이 수어통역사를 배제한 채 뉴스 화면을 편집하는 관행이 계속되자 인권위는 지난달 28일 긴급 성명을 배포하고 정부의 공식 브리핑에 대한 뉴스 화면 송출 시 반드시 수어통역사를 화면에 포함시킬 것을 방송사에 촉구했다. 인권위는 “정부의 브리핑을 송출하는 각 방송사들이 수어통역사를 배제한 채 뉴스 화면을 편집하는 관행이 이어지면서, 수어통역사를 배치한 정부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권위의 지적에 방송사들은 브리핑 송출시 수어통역을 제공하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미흡하다. 기자협회보가 지난달 26일부터 지난 3일까지 지상파 3사와 보도전문채널에서 현장 중계된 중앙방역대책본부 정례 브리핑을 살펴본 결과 KBS, YTN, 연합뉴스TV는 화면에 발표자와 수어통역사를 나란히 배치했으나 MBC와 SBS는 화면 오른쪽 아래에 자체 수어통역을 제공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농인(소리를 들을 수 없는 사람)은 청인(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과 대응하는 개념으로, 수화언어(수어)를 모국어로 하는 언어적 소수자다. ‘청각장애인’과 같은 사람들일 수는 있지만 장애인 복지 서비스 대상자로서의 지위를 강조하는 용어이기 때문에 개념적으로 다르다는 게 인권위의 설명이다.
고은경 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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