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3ㆍ1절 기념사에서 “함께 극복하자” 했는데…
외교부, 금명간 일본 대사 초치해 항의 전망
소강 국면에 접어드는 듯했던 한일 관계가 다시 급속도로 냉각될 전망이다. 일본이 5일 한국ㆍ중국 발(發) 여행객을 14일 간 격리 조치한다는 계획을 전격 발표하면서다. 문재인 대통령이 3ㆍ1절 기념사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를 한일 양국이 함께 극복하자’는 메시지를 발신한 것이 무색해졌다. ‘우리도 일본인의 한국 입국을 막아야 한다’는 국내 여론이 확산할 경우 한 일관계가 또 다시 깊은 수렁에 빠질 것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이날 “코로나19 환자가 많은 한국과 중국에서 온 입국자에 대해 지정 장소에서 2주간 대기하도록 요청한다”고 밝혔다. 대구와 경북 청도에 체류한 이력이 있는 외국인에 대해 입국을 금지한 현행 조치를 대폭 강화한 것이다.
정부는 충격적이라는 반응이었다. 우리 정부는 코로나19 확진자가 1,000명을 넘어선 일본에 대해 이렇다 할 입국 제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었고, 여기에는 ‘일본 역시 한국에 대해 필요 이상의 조처는 내리지 않을 것’이라는 상호주의에 대한 기대감이 깔려 있었다. 올해 도쿄올림픽 개최를 앞둔 일본이 입국 관문을 스스로 걸어 잠그기는 어려울 것이란 계산도 했다. 한일 간 막대한 인적ㆍ경제적 교류도 감안했다. 그러나 모두 빗나간 셈이 됐다. 외교부 관계자는 “코로나19 위기를 함께 극복해야 할 이웃 나라의 처신으로 보기 어려울 정도로 과도한 행동”이라고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외교부는 소마 히로히사(相馬弘尙) 주한일본대사관 총괄공사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로 불러들여 강한 유감을 표명하며 조치 철회를 요구했다. 일본의 이번 조치가 미래지향적 한일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물론, 코로나19 위기를 함께 극복하기로 했던 양국 간 공감대를 거스르는 행위라는 우리 정부 입장도 전달했다. 소마 공사는 한국 정부의 입장을 본국에 전달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부는 조만간 도미타 고지(冨田浩司) 주한일본대사를 공식 초치해 일본의 이번 조치에 항의하고 철회를 요구할 예정이다.
국내에선 우리 정부도 일본인의 국내 입국을 막으라는 목소리가 커질 전망이다. “사람과 물자의 이동을 제한하는 것은 코로나19 확산 방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세계보건기구(WHO) 권고를 내세워 왔던 정부로서도 일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김기정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상호주의를 깬 건 일본인 만큼 우리도 일본에 대해 모종의 조치를 취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졌다”며 “한중일 3국 간 증오의 패러다임에 일본이 기름을 부은 격”이라고 평가했다.
‘강제동원 판결’과 ‘일본의 수출 규제’를 둘러싼 한일 당국 간 협상에도 파장이 불가피하다. 최근 한일 양국은 물밑 접촉을 통해 도쿄올림픽 개최 이전 양국 간 정치적 해법을 찾는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해 왔다. 그러나 양국 간 갈등의 파고가 재차 높아진 만큼 실질적 협상도 당분간은 진행되긴 어려울 전망이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정치학과 교수는 “일본의 조치가 부당하지만, 정부로선 감정적 대응보단 냉정하게 한일 간 현안과 이번 문제를 분리해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진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도 “한일 양국 간에 협력이 되던 부분은 그대로 살려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되, 이번 조치에 대해선 한일이 함께 해법을 찾을 수 있는 공간을 따로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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