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정부 ‘한국ㆍ중국서 온 입국자 2주간 대기’ 조치
내부 비판 잠재우려 한국ㆍ중국 희생양 만들기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5일 한국ㆍ중국발(發) 입국 제한 조치를 전격적으로 단행한 직접적인 이유로 ‘정치적 출구찾기’가 거론된다. 크루즈선 대응 실패에서 최근 초ㆍ중ㆍ고 휴교 논란까지 국내 비판여론이 광범위하게 확산됐기 때문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가 지속될 경우 도쿄올림픽 연기ㆍ취소 논란이 가열될 수 있다는 점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아베 정부는 지난달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의 장기 격리와 하선 등을 둘러싼 대응 실패로 국내외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아베 총리의 절대 우군이랄 수 있는 산케이신문의 지난달 22~23일 여론조사 결과만 해도 내각 지지율이 1월 대비 8.4%포인트 급락한 36.2%까지 곤두박질쳤을 정도다. 당시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46.7%에 달했다.
지지율 급락을 의식한 아베 총리는 이후 잇따라 대책을 내놓았지만 되레 국민들의 불안을 가중시켰다. 지난달 25일 대형 이벤트 개최 여부를 주최 측 자율에 맡긴다더니 하루만에 2주간 중지ㆍ연기ㆍ축소를 요청해 혼란을 부추겼다. 지난달 27일에는 별다른 후속 대책도 없이 전국 초ㆍ중ㆍ고교 임시휴교 요청을 발표해 무방비 상태였던 학교와 학부모들을 놀래켰다. 게다가 최근엔 도쿄올림픽 취소ㆍ연기 문제까지 공론화하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아베 정권을 지지하는 우익세력은 더 강력한 입국 제한을 촉구했다. 산케이신문은 3일자 1면에 “방역보다 중국에 손타쿠(忖度ㆍ윗 사람 뜻을 헤아려 행동함)하고 있는가”라는 칼럼을 실었다. 사실상 중국발 입국을 전면 금지하라는 주문이었다. 야마다 히로시(山田宏)ㆍ아오야마 시게하루(靑山繫晴) 의원 등 코로나19의 명칭을 ‘우한 폐렴’으로 고집하는 극우 인사들도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총리가 보이지 않는다”고 압박했다. 사실 이 때까지만 해도 아베 총리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국빈 방일을 의식해 신중한 입장이었다.
그러나 이날 시 주석의 국빈 방일 연기가 결정되면서 아베 총리로선 비판 여론 무마와 후원세력 달래기 차원의 조치를 취하는 데 대한 부담을 덜었다고 볼 수 있다. 국민적 불안감이 큰 상황에서 ‘건강과 안전’을 명분으로 정치적 결단을 내리는 모습을 보여준 셈이다. 아베 총리가 전날 긴급사태 선언과 관련해 야권에 협력을 요청한 것에도 현 정부의 실책과 장기집권 폐해를 겨누고 있는 야권의 칼날을 무디게 하겠다는 정치적 계산이 담겨 있다.
다만 비자 효력 중지에 따른 관광객 입국 제한 조치는 역풍이 크지 않다고 판단했을 법하다. 중국은 코로나19 확산 이후 단체 해외여행을 금지했고 한국도 지난해 수출규제 갈등 이후 방일 여행객이 급감했다. 중국ㆍ한국 여행객보다 도쿄올림픽의 정상 개최가 더 중요한 과제라는 점도 작용했다. 일본에선 도쿄올림픽이 무산될 경우 일본 정부의 경제적 손실이 2조6,000억엔(약 28조원)에 이른다는 추산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그러나 중국에서 감염 확산이 진정되고 있고 한국에서 입국한 사람에 의한 감염이 확인된 사례가 없음에도 입국 제한 조치를 취한 것에 대해선 양국 정부와 국민들의 반발도 적지 않을 전망이다. 사실상 이번 조치가 아베 총리의 지지 회복과 도쿄올림픽 개최를 위해 두 나라를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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