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로서 존재감 부각… 그는 어떤 의사였을까 
안철수(왼쪽) 국민의당 대표가 2일 대구 중구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에서 의료봉사를 마친 뒤 비상대책본부 건물로 돌아가고 있다. 연합뉴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땀에 젖은 의료복을 입고 지친 표정으로 병원 문밖을 나오는 장면.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이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널리 공유가 됐습니다. 안 대표가 잠시 ‘의사’로 돌아가 부인 김미경 서울대 의대 교수와 함께 1일부터 대구에 내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 진료를 돕는 봉사를 하는 장면이었는데요.

그의 예상치 못한 행보는 연일 화제가 됐고 누리꾼들은 찬사를 보냈습니다. “봉사하는 ‘의사 안철수’ 모습 정말 좋다”“의사들도 두렵고 힘들어서 지원 못한다던데 지금의 영웅은 안철수다”“정치인보다 의사로서의 존재감이 훨씬 두드러진다”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반길 만한데, 그렇다고 이런 평가들이 마냥 달가울 수만은 없을 겁니다. 뒤집어 보면 이런 평가 뒤엔 ‘정치인 안철수’에 대한 실망감이 깔려 있기도 하기 때문인데요. 서랍 속에 장롱면허를 꺼내 들고 ‘쇼잉’하는 것 아니냐는 냉혹한 평가도 적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의사 안철수’는 정말 어떤 인물이었을까요. 25년도 더 된 과거로 잠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 보겠습니다.

 ◇기계 만지기 좋아하던 의대생 
안철수(오른쪽) 대표가 의대생 시절 의료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현재 대구에서 하고 있는 의료봉사. 그 시작은 의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부산 태생의 안 대표는 1980년에 서울대 의대에 입학했어요. 어릴 때부터 과학기술에 관심이 많고 기계 만지는 것을 좋아해 과학자가 되고 싶었지만, 의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기계는 취미로 접어둔 채 의대에 진학했다고 해요. 물론 의대 생활이 순탄치만은 않았다고 합니다. 본격적인 해부 실습을 시작한 후에는 학업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고 하죠.

그런 그가 가장 열정을 불살랐던 것이 봉사활동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가톨릭 신자가 아니었는데도, 봉사활동이 하고 싶어 가톨릭학생회가 주관하는 진료봉사에 동참했습니다. 의대 본과 2학년 때부터 졸업할 때까지 약 3년 동안 의료봉사를 다녔어요.

부인 김미경 교수를 처음 만난 것도 의료봉사에서였습니다. 안 대표는 2009년 6월 MBC 프로그램 ‘무릎팍도사’에 출연해 “아내는 서울대 의대 1년 후배인데 봉사 진료를 하러 갔다가 만났다. 처음에는 도서관 자리를 잡아주는 사이로 시작됐고, 이후에 늘 함께 공부를 하고 커피를 마시는 사이가 됐다”고 소개하기도 했죠.

 ◇군의관으로 의료 현장 경험하다 
안철수(왼쪽) 대표와 부인 김미경 교수가 1985년 서울대 의대 캠퍼스에서 사진을 찍었다. 안철수 후보 캠프 제공

의대를 마치고 난 이후에는 조금 남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안 대표는 의대에 진학하고 나서 환자를 직접 진료하는 임상의학보다 병의 원인을 알아내거나 치료법을 발견하는 기초연구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해요. 한때 노벨의학상을 꿈꾼 적도 있을 정도로요. 이에 안 대표는 인턴, 레지던트 과정을 밟는 대신 1986년 의대를 졸업한 후 동 대학원으로 진학했어요. 1988년엔 석사를, 1991년엔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이때까지 의료 현장에서 의료 행위를 한 건 아니라고 봐야겠죠. 박사학위를 따기 전인 1989년부터는 단국대 의대에서 2년 가까이 전임강사를 지냈어요. 최연소 의대교수였다고 합니다. 그러니 실제 의료현장에서 의사로 일을 한 건 1991년 2월부터 1994년 4월까지 해군에서 군의관으로 복무한 것이 전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인간 바이러스 아닌 컴퓨터 바이러스에 눈 뜨다 
안철수 대표가 2005년 안철수연구소 대표를 지내던 시절. 류효진 기자

‘의사 안철수’와 컴퓨터 바이러스의 만남은 의대 대학원 시절인 1988년 전후로 알려졌어요. 대학원에서 심장 부정맥을 연구하는 심장 전기 생리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을 때 처음 컴퓨터 바이러스를 발견했다고 해요. 마침 컴퓨터를 공부하던 시기였죠. 컴퓨터 잡지에서 바이러스에 대한 내용을 본 후 자신의 플로피 디스켓을 검사해 보니 3장이 바이러스에 감염돼 있었다고 해요. 바이러스가 감염된 과정을 반대로 하면 치료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만든 것이 ‘백신’(Vaccine)이란 이름의 안티바이러스 프로그램이었죠.

안 대표는 이후로도 신종 바이러스가 나올 때마다 직접 만든 백신을 무료로 배포했다고 해요. 그 덕에 7년 동안 낮에는 의사, 밤에는 백신 제작자로 이중생활을 했었죠. 입대 전날까지도 백신 개발에 매진했다고 하는데요. ‘미켈란젤로 바이러스’ 백신을 만드느라 가족들에게 군대 간다는 말도 못하고 나왔다는 일화는 익히 알려져 있죠.

안 대표는 7년의 이중생활 끝에 마침내 백신 개발로 전향하게 됐어요. 1995년 ‘안철수컴퓨터바이러스연구소(현 안랩)’를 설립하면서 의사 생활에 종지부를 찍은 겁니다. 물론 의사를 그만둔 건 후회하지 않는다고 해요. 그는 ‘무릎팍도사’에서 “지금도 의사를 했으면 더 행복했을 것도 같다. 더 단순하게 행복하게 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면서도 “의사를 그만둔 것은 후회하지 않는다. 그만큼 다채롭게 많은 사람을 만나며 살았기 때문”이라고 밝히기도 했죠.

25년 만에 의사로 돌아가 현장으로 달려간 안 대표. 그는 하루에도 몇 시간씩 방호복을 입고 오전, 오후로 나눠 환자를 대하고 있다고 합니다. 코로나19 확진 환자를 진료하고 검체를 채취하는 업무라고 하는데요. 병실을 돌면서 환자들의 상태를 확인하고, 몸 상태 등 특이사항을 주치의 교수에게 알려준다고 합니다. 다른 봉사자나 의료진과 마찬가지로 점심은 도시락으로 해결하고요.

의료 현장에서만큼은 ‘정치인 안철수’가 아닌, 오로지 ‘의사 안철수’만 있다고 하는데요. 안 대표 스스로도 본인을 내세우지 않고, 진료를 받는 환자들도 안 대표를 알아보지 못한다고 하죠. 과연 코로나19가 소환한 ‘의사 안철수’는 힘 빠져가던 ‘정치인 안철수’의 행보에 날개를 달아줄 수 있을까요?

윤한슬 기자 1seu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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