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에 잡아 놓은 터키행 항공권은 결국 취소다. 당장 몸이 아프거나 아픈 이를 돌봐야 하는 이들에게 비할 순 없겠지만, 또 손님이 끊긴 가게를 지키는 이들은 다 같은 맘이겠지만, ‘여행’이라는 단어를 붙이고 사는 업계에도 한숨이 쌓여 간다. ‘집 떠난 나그네가 되는 것’이 곧 여행인지라 길이 끊어지고 문이 닫히면 여행은 끝이다. 비행기가 날기를 멈추면 사람은 더 이상 오갈 수 없고, 항공권을 파는 회사도 여행자를 맞던 숙소도 관광객을 안내하는 일도 모두 끝이 난다.
새 책을 만들 때면 일년의 절반 정도를 해외에서 지낸다. 하루 분량의 취재를 끝내고 “이제 퇴근”이라며 숙소 침대에 눕는 걸 반복하다 보면, 매일 바뀌는 남의 나라 숙소도 내 집 같아지고 몇 달 만에 돌아온 한국 집은 단골 호텔처럼 느껴진다. 이렇게 집과 숙소의 경계가 불분명한 직업을 가진 지 15년째, 세계를 떠도는 많은 여행자가 그렇듯 대한민국 밖에도 마음 한 편을 맡겨 두고 온 도시들이 생겼다. 이젠 무용지물이 된 항공권으로 신나게 달려가려 했던 곳, 이스탄불은 나에게 언제라도 찾아가고픈 마음의 고향 같은 도시다.
이스탄불이 왜 그리도 특별한지 누군가 물을 때면, 오리엔트 특급열차의 유럽대륙 종착지였던 시르케지 역에 내려 눈이 휘둥그레해졌을 100년 전 선배 여행자들을 떠올린다. 역 앞의 시장에선 이집트와 인도에서 실어온 향신료 냄새가 풍겨 오고, 기도시간을 알리며 울려 퍼지는 아잔 소리 사이로 다국적 상인들의 흥정은 끝없이 이어지고, 보글보글 터키식 커피가 끓여지는 찻집에서는 각국 외교관들이 세상 돌아가는 정보를 모으고 있었을 게다. 도시 가운데를 흐르며 아시아와 유럽을 나누는 보스포루스 해협에서 배 위 난간을 오가며 고개만 돌려도 다른 대륙의 풍경을 만나는 건 이스탄불을 찾은 이만이 느낄 수 있는 짜릿함이다.
한때 세 대륙에 걸친 나라를 세운 오스만제국의 저력은 이토록 수많은 것들이 오가는 교차점인 이스탄불을 수도로 삼은 데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유럽에서 이스탄불까지 달려온 사람들은 배를 타고 아시아 대륙의 첫 번째 기차역인 하이다르파샤 역으로 넘어가 다시 이란과 중앙아시아, 중국으로 여행을 이어갔다. 폐쇄와 고립 대신 통상과 여행으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낯선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탐구하고 적응해 가며 제국의 면역력을 키우고자 했다. 비잔티움제국의 수도가 세워진 4세기부터 모두가 이스탄불을 탐냈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게 만남과 연결이 가장 큰 매력인 도시, 하늘과 땅의 허브가 되길 꿈꾸는 도시에서 잠시지만 우리에게 단절을 선언한 셈이다.
내 눈앞에서 닫혀 버린 여행길을 마주 하니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게 그리 오랜 역사가 아니라는 사실이 새삼 떠올랐다. 1989년 해외여행 전면 자유화가 되기 전까지만 해도 여권과 비자는 극히 일부의 사람에게만 제한적으로 주어졌다. 그 후 30년 만에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프리패스처럼 여겨지는 대한민국 여권을 들고 한해 동안 우리 인구의 절반이 출국하게 된 요즘, 여행 관련업은 역사상 가장 가혹한 시절을 보내게 되었다. 하지만 닫힌 경계를 넘어서는 자유를 경험해 본 이들은, 타자와의 만남을 통해 자신을 발견해 본 이들은 다시 서로의 땅을 밟으며 국경을 넘는 날을 꿈꾸게 될 것이다. 인류 역사에 존재한 감염병들이 그랬던 것처럼 지금 이 순간 역시 과거가 되고, 더 이상 낯선 이와의 연결을 겁내지 않는 튼튼한 일상이 복원될 것이다. 그때가 오면 어슴푸레한 새벽부터 이스탄불 뒷골목을 헤매고 다니다가 황금빛으로 빛나는 금각만의 석양에 안녕, 인사를 하고 올 예정이다. 마치 이스탄불이 진짜 고향이라도 된 듯 곧 찾아올 그날을 간절하게 기다린다.
전혜진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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