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전시, 교민 24명 ‘음성’ 불구 TK 주민번호만 보고 격리
난징시, 韓기업에 비용 전가… 창춘시 생필품 전달 등 변화도
중국 일부 지역에서 한국인을 겨냥한 과도한 방역 조치로 교민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으려는 중국의 절박함이 자칫 반중 정서를 부추기는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올 정도다. 중국 측의 자제와 우리 외교당국의 적극적인 대처가 요구된다.
4일 현재 중국 광둥성 선전시에서는 지난달 28일 입국한 교민 24명이 엿새째 호텔에 격리돼 있다. 핵산검사에서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았지만 시 당국이 일방적으로 방침을 바꿔 주민등록번호 소재지가 대구ㆍ경북인 경우 당사자는 물론 가족까지 격리 조치했다. 지난 2일엔 호텔을 옮기면서 14일 격리기간을 새로 시작하겠다고 해 실랑이가 오갔다. 아내와 두 딸이 격리된 교민 A씨는 “아내는 경북에서 태어났지만 줄곧 수도권에서 살았고 최근 대구ㆍ경북에 다녀온 적도 없다”며 “더구나 두 딸은 출생지가 서울과 경기인데도 함께 격리돼 있다”고 말했다.
장쑤성 난징시에선 한국인 격리비용을 한국 기업에게 떠넘겨 논란이다. 다른 지역과 달리 지난달 30일부터 한국발(發) 도착 승객들에게 14일간 호텔 격리비용을 부담토록 한 데 대해 우리 측이 이의를 제기하자 시 당국은 “동의한다”고 했지만, 실제 교민들이 격리돼 있는 각 구(區)는 “한국 업체 직원인 경우 대기업은 100%, 중소기업은 50%를 부담하라”며 몽니를 부리고 있다. 산시성 시안에서도 한국발 입국자에게 호텔격리와 자가격리 중 선택하라는 시 당국의 방침에 따라 귀가를 택한 상당수 교민이 “14일이 지난 뒤 들어오라”는 중국인 이웃들의 반대로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현지 한인회 관계자는 “입국 교민의 60% 가량이 귀가하지 못한 상태”라고 전했다.
이 같은 사실이 전해지면서 한국 내 반중 정서가 재점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중국의 공식 방침은 아니더라도 극도로 민감한 시점에 일부 지방정부가 상식 밖의 과도한 조치를 취해 우리 교민들이 피해를 입고 고통받는 상황은 결과적으로 양국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나마 지린성 창춘시가 호텔에 격리된 한국인들에게 생필품을 전달하고, 산둥성 웨이하이시가 호텔 격리기간을 7일로 줄이는 등 일부 변화된 모습도 감지된다.
주중 한국대사관과 각지의 총영사관이 교민 피해가 없도록 적극 나서야 한다는 주문도 많다. 대구ㆍ경북 주민번호를 가진 아내와 함께 두 딸도 격리된 선전 교민 B씨는 “중국 측에 단 하나의 요구도 관철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대체 대한민국 정부가 왜 존재하는지 의문이 들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동남아에서도 각국이 잇따라 한국발 승객 입국을 제한하면서 현지 교민 생활이 상당한 타격을 받고 있다. 베트남에서 전자부품업체를 운영하는 한 교민은 “인접국을 경유하는 통로마저 대부분 막혔다”며 “사업설명회 취소 등 현지 기업인들의 고통이 말할 수 없이 크다”고 전했다. 베트남을 비롯해 말레이시아ㆍ필리핀ㆍ싱가포르 등이 한국발 입국자에 대해 사실상 문을 닫았고, 미얀마ㆍ라오스ㆍ브루나이는 자가격리와 검역 강화 조치를 내렸다. 인도네시아ㆍ캄보디아도 조만간 입국 제한 수위를 높일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rollings@hankookilbo.com
하노이=정재호 특파원 next8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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