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길목, 경북 자인에서 만나는 봄의 정취


‘홍길동전’을 쓴 허균은 미식가였다. 심지어 새로운 음식을 맛보려고 특정 지방의 관직을 자청했고, 유배지도 음식을 기준으로 잡아서 그곳으로 보내 달라고 졸랐다. 친구였던 한석봉에게 “평생 입과 배(口腹)만을 위한 사람”이었다고 고백하는가 하면, 유배지에서는 그동안 먹었던 음식을 정리해 ‘도문대작’이라는 책도 냈다.
허균이 요즘 사람이라면 전국을 다니며 ‘맛’을 즐기는 먹방 유튜버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봄기운에 땅이 들썩거리는 이 즈음에는 경북 자신을 방문하지 않았을까.
◇ 향긋한 봄 내음이 걸음을 붙잡는 곳
대구 지역 사람들에게 자인은 ‘한우’로 유명하다. 대도시를 벗어나 시골로 들어서기 전 자인이 나타난다. 위치로 보나 지역의 성격으로 보나 도시와 농촌의 중간쯤 된다.
자인은 봄이 오는 길목이다. ‘맛’으로 찾아오는 봄을 즐기기에 자인만 한 곳이 없다. 자인전통시장에는 진작부터 봄나물이 가득 담긴 소쿠리들이 주인공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누구 할 것 없이 봄나물 소쿠리 앞에서 걸음이 멈춘다. 땅의 기운을 잔뜩 머금은 향기와 소리 없는 아우성 같은 파릇파릇한 빛깔에 저절로 눈길이 가는 까닭이다. 장바구니를 잠시 내려놓고 밥 한끼 먹고 가는 것이 좋다. 시장 밥집 어디든 으레 냉이 된장국에 달래 무침, 돌나물 물김치가 반찬으로 올라오는 까닭이다.


◇ 먼 데서 온 ‘청정 손님’ 미나리와 한우의 만남
냉이와 달래, 돌나물은 인근에서도 많이 나는 나물이지만, 조금 더 먼 곳에서 온 봄 손님이 있다. 미나리다. 미나리는 계곡에서 흘러나오는 차갑고 맑은 물로 키워야 빛과 향이 깊어진다. 청도 미나리가 유명한 이유다.
청도 미나리를 실은 차는 봄길을 따라 대구로 들어서기 전, 자인에서 한번 멈춘다. 미나리와 특별한 만남이 기다리고 있는 까닭이다. 자인 특산물인 한우다.
지금도 미나리 하면 삼겹살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으나, 몇 해 전부터 미나리와 한우의 조합이 각광받고 있다. (미식가들 사이에선 말 그대로 돌풍이다.) 미나리 줄기에 가득한 봄의 향기와 한우의 풍미가 더하면 한 마디로 “봄 음식 중 최고의 조합”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고기를 맛본 후 이곳에서는 신토불이 식품으로 어김없이 상에 오르는 냉이 된장국과 달래 무침으로 기름진 속을 달래면 이보다 깔끔한 마무리가 없다.


◇ 경산에서 자인까지, 근교 꽃구경 명소
4월이면 자인에서 경산으로 돌아오는 길은 이팝나무 꽃길이 된다. 가로수가 이팝나무다. 하얀 고봉밥을 얹어놓은 듯한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이밥에 고기국’이라는 옛사람들의 말이 떠오른다.
벚꽃 구경 명소도 두 군데나 있다. 이른 벚꽃을 보고 싶은 이들은 영남대 교정이 딱 좋다. 시기를 놓친 이들은 대구한의대로 가면 된다. 가장 늦게 피고 오래 남아서 상춘객을 반긴다.
봄으로 떠나는 맛 여행, 경상도 전체를 통틀어도 한우 명소로 손꼽히는 자인으로 걸음을 해보는 것이 어떨지. 자인 한우에 청정 지역 청도에서 온 미나리를 곁들이면 허균의 ‘도문대작’에 자리를 틀고 앉아도 손색이 없을 최고의 봄 음식을 경험할 수 있다.
김광원 기자 jang501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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