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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마음 방역

입력
2020.03.05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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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2일 대전 국군간호사관학교에서 신임 장교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관련 교육을 받고 있다. 1일자로 소위로 임관한 이들 간호장교 75명은 3일 임관식 후 대구 지역에 투입된다. 연합뉴스
2일 대전 국군간호사관학교에서 신임 장교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관련 교육을 받고 있다. 1일자로 소위로 임관한 이들 간호장교 75명은 3일 임관식 후 대구 지역에 투입된다. 연합뉴스

코로나 시국에 제목을 언급하기가 저어되는, 같은 난리를 겪고 있는 일본에선 판매량이 급증하고 있다는 알베르 카뮈 소설의 한 대목. 작품 속 도시 최일선에서 역병과 맞서 싸우는 의사이자 독자에게 이야기를 전하는 서술자 ‘리외’는 감염병이 퍼져가는 와중 도시민들의 소통에 대해 이런 관찰기를 남긴다.

‘극도의 고독 속에서 결국 아무도 이웃의 도움을 바랄 수는 없었고 제각기 혼자서 저마다의 근심에 잠겨 있었다. 만약 우리들 중의 누가 우연히 자기 내심을 털어놓거나 모종의 감정을 말해도, 그 사람이 받을 수 있는 대답은 어떤 종류이건 간에 대개는 마음을 아프게 하는 대답이었다.’(이하 김화영 번역)

고통 받는 이는 오래 되씹어온 괴로움을 토로하는 것이지만, 이에 공감할 준비나 경험이 갖춰지지 않은 상대방은 그저 상투적 감상으로 받아들이며 호의에서건 악의에서건 말을 꺼낸 자를 침묵하게 하는 반응을 보인다. 젊은 시절부터 지병을 안고 살아온 작가 카뮈의 이력 그리고 이 작품이 거대한 ‘인공 역병’이라 할 수 있는 2차대전의 체험을 거쳐 탄생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실적 무게가 느껴지는 진술이다.

병의 치명률이나 의료환경 등에서 소설 속 상황에 비할 바는 전혀 아니지만, 리외가 간파한 냉담과 낙담의 악순환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견디고 있는 우리 사회에도 급속히 심화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특정 지역사회가 집중 피해를 입는 통에 얼마간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경험과 실감의 차이가 곧잘 지역 갈등을 조장하는 쪽으로 번지는 일이 대표적이다. 전파 고리를 끊어내자는 정책적 대의 아래 당사자의 프라이버시 침해를 감수하며 공개되는 확진자 동선은 사생활과 관련된 온갖 저열한 상상과 버무려져 인터넷을 떠돈다. 한편으론 코로나19가 전반적으로 위험이 크지 않은 병이라 해도 누군가는 이로 인해 죽음에 이를 수 있다는 점 또한 분명하다.

다시 카뮈 소설을 들여다보면 외지인 ‘타루’는 도시를 탈출하는 대신 리외를 비롯한 지역 의사들과 보건대를 조직해 방역에 분투한다. 무엇 때문에 이런 일에 뛰어드느냐는 리외의 질문에 타루는 “아마 나의 윤리관 때문인가봐요”라고 답한다. “어떤 윤리관이지요?” “이해하자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그렇다고 말하긴 어렵겠지만, 우리는 대체로 역지사지를 실천할 윤리적 심성을 간직하고 있을 터이고, 지금이 그런 덕성을 최대한 발휘할 시절이겠다.

한편으로는 각자의 생활세계를 모조리 빨아들일 법한 코로나19에 대한 열띤 관심도 우려되는 게 사실이다.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이 절망적이던 카뮈 소설 속 도시민들은 급속히 향락과 탕진에 휩쓸린다. 이번 사태의 장기화를 염두에 둔 여러 전망 중 가장 비관적인 것이라도 이 소설 같진 않겠지만, 과잉된 감정 소모만큼은 지금도 광범위하게 발생하고 있는 건 아닐지. 이 과잉의 필터가 (가짜)뉴스의 의미를 부풀리고 불안을 증폭하는 통에 가뜩이나 동요하는 각자의 발밑이 더욱 흔들리고 있는 건 아닐지.

소아정신과 전문의 서천석 박사의 제안은 이렇다. ‘그냥 지금은 불안할 수밖에 없는 시간이라 받아들이고, 뭔가 다른 것을 찾아서 기분을 전환하며 시간을 살아내야 한다. 뉴스는 정해진 시간에 건조한 사실과 정보 중심으로 보고 다른 생활을 만들어야 한다.’

이상의 두 제안(역지사지와 생활의 정상화)은 서로 모순되는가. 냉담하게 자기 일에 몰두하는 자가 어떻게 타인의 고통을 깊이 이해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도 가능하다. 하지만 분명한 건 끓어오르는 불안과 정념은 불모(不毛)에 가까운 감정이며 이를 포함한 우리의 감정이란 결국 한정된 자원이라는 사실이다. 감정을 아끼며 보다 생산적인 영역에 나눠 써야 한다는 것은 이 유례 없는 난리통에도 여전히 유효한 조언이다. 카뮈 소설에서 영웅적 활약을 펼쳤던 타루는 제 몸을 돌볼 기운을 남겨두지 않은 이유로 안타깝게 숨을 거뒀다. 모두의 안녕과 건투를 함께 응원할 때다.

이훈성 산업부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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