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 극우정권 “역내 자유이동이 감염 전파”… 솅겐조약 파기 요구
EU “비공식 루트 이동 땐 방역 구멍”… 국경 폐쇄에 회의적 입장
美펜스 “EU 시민들 이동 지켜봐”… 유럽 전역 ‘여행 제한’ 열어둬
이탈리아발(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유럽연합(EU)을 떠받치는 ‘하나의 유럽’ 정책이 기로에 섰다. 통합의 상징 ‘솅겐조약’이 되레 걸림돌이 되고 있다. 자유로운 역내 이동을 보장한 탓에 빠른 감염증 전파의 원흉으로 지목된 것이다. 여기에 난민 위기까지 겹쳐 이래저래 ‘열린 유럽’의 아성이 도전 받는 형국이다.
유럽질병예방통제센터(ECDC)는 2일(현지시간) EU 내 코로나19 위험 수준을 ‘보통’에서 ‘보통과 높음의 중간단계’로 상향 조정했다고 밝혔다. EU 행정부 수반 격인 우르줄라 폰데이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바이러스가 아주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는 의미”라며 방역 등에 필요한 대응팀 가동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유럽 코로나19 확산세는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ECDC 집계 결과, 이날 오전 기준 유럽 24개국에서 2,199명의 확진자가 나왔다. 특히 유럽 코로나19 발원지 이탈리아의 상황은 상당히 심각하다. 이날 오후까지 이탈리아 내 누적 확진자와 사망자 수는 각각 2,036명, 52명에 달했다. 미국 코로나19 태스크포스(TF) 수장인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EU 시민들은 여권 없이 자유롭게 이동하기 때문에 면밀히 지켜보고 있다”면서 유럽 전역에 대한 ‘여행 제한’ 가능성을 열어뒀다.
감염증 위기는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한시라도 빨리 국경을 닫아야 한다는 강경 여론에 힘을 더하고 있다. 솅겐조약의 파기, 즉 EU의 근간을 허물라는 압박이다. 난민 유입을 이유로 이전부터 조약 무용론을 주장해 온 극우 정치권이 선동에 앞장서고 있다. 프랑스 극우정당 국민연합(RN)의 마린 르펜 대표는 최근 공영 라디오 프랑스앵테르에 출연해 “EU는 이런 현실에서도 국경 개방을 마치 ‘종교’처럼 섬기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EU 집행부는 아직까지 국경통제에 회의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여러 반론이 있는데 일단 막대한 경제적 손해는 물론,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로 EU의 분열 양상이 드러난 마당에 곧바로 결속력을 해치는 또 하나의 선례를 만드는 게 부담스러워서다. 프랑스 독일 등 7개국 보건장관도 지난달 25일 “국경 폐쇄는 합리적이지 않다”는 결론을 냈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EU가 브렉시트의 충격을 딛고 하나의 유럽 부활을 위한 정비에 힘을 쏟던 중 코로나19라는 악재를 만났다”며 “시기가 최악”이라고 지적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4년 전 대규모 ‘난민 사태’가 재연될 위험까지 불거졌다. 시리아 내전 격화로 아랍 이주민들이 대거 피란길에 오르자 이들의 경유지인 터키 정부가 EU의 지원 약속 불이행을 문제 삼아 국경 빗장을 풀겠다고 위협하는 중이다.
무엇보다 국경폐쇄의 실효성이 담보되지 않았다. 로이터통신은 “EU 전문가들이 최근 코로나19 유증상자의 국경 이동 금지가 오히려 질병 확산을 조장할 것이라는 데 의견 일치를 봤다”고 전했다. 불법으로 국경을 넘는 사람이 늘 경우 방역에 구멍이 뚫리게 돼 입국 제한보다는 격리 조치 강화가 더 타당한 대안이라는 것이다. 마리 드소머 싱크탱크 유럽정책센터(EPC) 선임분석관은 NYT에 “설령 국경 폐쇄를 강행하더라도 EU가 유연성을 발휘해 가입국 국민을 보호하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라며 솅겐조약의 활용을 주문했다.
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