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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용의 도시연서] 대전 소제동과 순천 조곡동

입력
2020.03.03 18:00
수정
2020.03.03 19:05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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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소제동 철도관사마을. 최성용 작가 제공
대전 소제동 철도관사마을. 최성용 작가 제공

백여 년 전, 조선의 도시에는 주택난이 심했다. 주택의 수도 부족했고, 질도 좋지 않았다. 그러니 괜찮은 인력을 고용하려면 집을 마련해 줘야 했다. 관사와 사택이 많이 지어졌다. 그중에서도 철도 관사가 제일 많았다. 철도 노선이 하나 생길 때마다 철도 관사가 지어졌다. 철길이 전국으로 확장되면서 전국 곳곳에 철도 관사가 생겼다. 직원이 많은 주요 역 인근에는 수백 동 규모의 커다란 관사 마을이 조성되기도 했다. 주택난이 심했고, 도시기반시설도 열악했던 시절, 철도 관사 마을은 꽤나 괜찮은 주거지였다.

1954년, 일반 공무원에게 관사를 제공하는 제도가 폐지되면서 철도 관사는 민간에 불하되기 시작했다. 국가 소유였던 집이 개인의 소유로 바뀌자, 똑같은 모습이었던 관사도 다양한 모습으로 변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생활에 맞게 철도 관사를 이리저리 고쳤다. 북쪽에 있던 대문을 남쪽으로 옮기고, 정원을 마당으로 바꾸었다. 다다미방은 온돌방이, 도코노마는 장식장이 됐다. 더 넓은 실내 공간을 갖고 싶던 사람들은 기존 건물에 덧대어 새 건물을 지었다. 철도 관사는 한 지붕을 두 집이 나누어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지붕 아래 두 집을 모두 사서 한 집으로 트기도 했다. 오래된 지붕과 담장도 새 기와와 벽돌로 바꾸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도시도 변하면서, 대부분의 철도 관사는 철거됐다. 철도 관사는 한때 우리 도시의 주된 주택 양식 가운데 하나였지만, 이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그 와중에 꿋꿋하게 살아남아 아직도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관사 마을이 있는데, 대표적인 곳이 순천 조곡동과 대전 소제동 철도 관사 마을이다.

순천 조곡동 철도관사마을. 최성용 작가 제공
순천 조곡동 철도관사마을. 최성용 작가 제공

순천 조곡동 관사 마을은 전라선과 경전선이 만나는 순천역 인근에 있다. 1930년대에 지어진 이 마을에는 152채의 관사가 있었다. 열악한 기존 순천 시내와는 달리 상하수도와 전기 시설이 잘 갖춰졌고, 직원들을, 그러니까 주민들을 위한 병원, 운동장, 목욕탕, 수영장까지 있는 고급 주택가였다. 이후 지금까지도 주민들은 앞에 묘사한 것처럼 오래된 집을 고치고 가꾸며 관사 마을을 훌륭한 주택가로 남게 했다.

순천 조곡동 철도관사마을. 최성용 작가 제공
순천 조곡동 철도관사마을. 최성용 작가 제공

내가 처음 그 마을에 갔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담장을 따라 길가에 심어진 나무였다. 담장 정원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온갖 종류의 식물들을 집 밖에 심고 예쁘게 관리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서 마을을 대하는 주민들의 마음이 느껴졌다.

그런 주민들이 여전히 관사 마을에 살고 있다. 지금은 60여채의 관사가 남았고, 철거된 관사 자리에는 마을과 어울리는 아담한 단독주택이 들어섰다. 100여년 전의 도시구조를 그대로 갖고 있으면서도, 옛 집과 새 집이 어우러진, 여전히 순천 시민들의 매력적이고 소중한 주거지역으로 조곡동 철도관사마을은 남았다.

대전 소제동 철도관사 마을. 최성용 작가 제공
대전 소제동 철도관사 마을. 최성용 작가 제공

대전 소제동 철도 관사 마을은 순천 조곡동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다. 물론 소제동 철도 관사 마을도 오랫동안 주민들의 소중한 보금자리 역할을 했다. 하지만 2000년대에 접어들어 철거의 길로 접어들었다. 2006년 이 일대는 대전역세권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됐다. 재개발을 꿈꾸면 집을 고치지 않는다. 고치지 않은 집은 살기 어려워지고, 이는 다시 재개발의 이유가 된다. 우리 도시의 많은 단독주택지가 이런 식으로 망가지고, 사라졌다. 소제동 관사 마을도 그러했다.

빈집이 늘어가던 와중에 서울에서 일군의 사람이 내려왔다. 그들은 오래된 건물을 리모델링해 멋진 가게를 만드는데 선수들이었다. 요즘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독특한 소제동의 매력에 빠진 그들은 빈집 사이에 멋진 공간을 만들어냈다. 금세 입소문이 났고, 소제동 관사마을은 순식간에 대전에서 가장 주목받는 공간이 됐다.

대전 소제동 철도관사 마을. 최성용 작가 제공
대전 소제동 철도관사 마을. 최성용 작가 제공

‘선수 입장’을 바라보는 시선은 갈렸다. 재개발을 원하는 사람들은 지금껏 보지 못했던 종류의 외지인들의 등장이 재개발에 악영향을 줄까 봐 걱정이다. 관사 마을을 지키고자 했던 사람들은 그들의 등장을 반겼다. 집값만 올린다는, 원주민은 쫓겨날 것이라는, 주거지를 상업지로 만들면 안 된다는 비판도 있다. 복잡한 상황에 별로 관심 없는 사람들은 대전에도 서울의 익선동 같은 핫 플레이스가 생겼다고 좋아했다.

여러 시선 속에서 철도 관사 마을의 가치가 알려지면서 별다른 의심 없이 철거를 향해 가던 시간표가 멈췄다. 지금 소제동 현장에서는 아파트를 짓기 위해, 길을 내기 위해 관사를 철거해야 한다는 의견과 관사를 보존하고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치열하게 맞서고 있다.

전국에 있던 철도 관사 마을은 대부분 철거됐다. 도시에는 순천과 대전, 두 곳에 남았다. 고치며 살아온 순천은 아직도 멋진 주거지로 남아있다. 대전은 철거를 앞두고 그 존재와 가치가 알려졌다. 소제동 철도 관사 마을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난 대전은 꼭 철도 관사 마을을 가졌으면 좋겠다. 대전은 철도가 만든 도시가 아닌가? 철도 도시 대전을 온몸으로 표현할 수 있는, 박물관 속 유물이 아닌, 현재를 살아가는 철도 관사 마을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멋지고 다행스러운 일인가? 방법은 찾을 수 있다.

최성용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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