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와인만큼 역사와 문화가 깊이 깃든 술이 있을까요. 역사 속 와인, 와인 속 역사 이야기가 격주 수요일 <한국일보>에 찾아옵니다. 2018년 소펙사(Sopexaㆍ프랑스 농수산공사) 소믈리에대회 어드바이저 부문 우승자인 출판사 시대의창 김성실 대표가 씁니다.

돔페리뇽(Dom Pierre Perignon) 동상(왼쪽)과 그의 이름을 붙인 샴페인 돔페리뇽 화이트와 로제. 그는 적포도로 화이트와인을 만들었고(블랑 드 누아), 수확량을 조절해 품질을 높였으며, 선선한 아침에 포도를 수확해 아로마를 보존하고, 포도밭에 압착기를 설치하여 수확 즉시 압착한 신선한 주스로 와인을 빚었다. 포도밭 별로 구분하여 와인을 담그고, 유리 용기에 와인을 보관하여 신선도를 유지하였다. 그가 만든 와인은 4배나 높은 가격을 받을 정도로 품질을 인정받았다. ⓒVictor Grigas(위키미디어 제공)ㆍ와이너리 홈페이지 캡처

“샴페인도 와인인가요?” “제과점에서 파는 노랗거나 연분홍 빛깔의 그 음료가 샴페인 아닌가요?” 샴페인 이야기만 나오면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샴페인은 ‘상파뉴’의 영어식 표현으로 프랑스 상파뉴 지방에서 생산되는 스파클링 와인을 말한다. 허용된 품종(샤르도네, 피노누아, 피노뮈니에 등 7가지)으로, 반드시 손으로 수확한 상파뉴산 포도를 사용해 상파뉴가 인정한 양조법으로 만들고 최소 숙성기간 등 엄격한 규정을 지켜야 그 이름을 붙일 수 있다.

샴페인의 유래를 찾으러 1700년대 상파뉴의 오빌레 수도원으로 가 보자. 그곳에는 와인을 담당한 수사 돔페리뇽이 샴페인을 발견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포도밭에 쌓인 눈이 녹기 시작한 어느 봄날이었다. 돔페리뇽은 수도원의 와인 창고 문을 연 순간 경악을 금치 못했다. 창고 바닥은 와인병이 깨져 흩어진 유리 조각과 쏟아진 와인으로 뒤범벅이었다. 예전에도 와인에 거품이 일다가 간혹 병이 폭발하긴 했지만, 와인이 절반 가까이 폭발하기는 그 해가 처음이었다. “또 악마가 장난을 쳤구나!”

당장 성찬식에 쓸 와인도 모자라는 데다, 내다 팔 와인도 없으니 수도원 살림마저 걱정이었다. 수도원 포도밭을 경작한 소작농들에게 나눠줄 와인은 물론이고, 수도하느라 답답하고 지루할 동료 수사들에게 배급할 와인도 부족할 테니…. 그는 가슴이 답답했다.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생각에 골몰한 그는 무의식적으로 깨진 병 조각에 담긴 와인을 한 모금 머금었다. 그 순간 그는 심장이 멎는 듯했다. “오! 나는 지금 별을 마시고 있구나!”

전설 같은 이야기지만 돔페리뇽은, 최고급 프레스티지 퀴베 샴페인에 그의 이름을 선점해 붙인 샴페인하우스가 있을 정도로 와인을 잘 만들던 실존 인물이다.

오늘날 상파뉴 지방은 스파클링 와인으로 유명하지만, 17세기까지만 해도 기포가 없는 스틸 와인의 주생산지였다. 스틸 와인에 생기는 기포와 가스는 제거해야 할 골칫거리일 뿐이었다. 발효의 원리를 모르던 당시엔 돔페리뇽이 말했듯, 이를 악마의 장난이라 여겼다.

북위 49~49.5도에 위치해 기후가 서늘한 상파뉴 지방에서는, 포도가 익기를 기다리다 보니 와인을 늦게 담글 수밖에 없었다. 기온이 급격히 낮아지면 발효가 진행되다가 멈추기도 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당시 사람들은 와인이 완성됐다고 여겼으나, 계절이 바뀌어 땅이 녹을 무렵이면 와인에 기포가 일어 폭발하는 일이 종종 발생했다. 기온이 낮아지면 효모가 활동을 멈추었다가 기온이 오르는 봄이 되면 다시 깨어나 발효해 이산화탄소가 생기기 때문이다.

샴페인은 이처럼 우연히 발견됐다. 그 뒤로 와인메이커의 경험에 과학 기술이 합세해 샴페인은 스타일을 완성해 갔다.

라부아지에(Antoine Laurent Lavoisierㆍ왼쪽)는 발효의 원리를 화학적으로 밝혔다.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는 발효란 효모가 당에 작용하여 알콜과 이산화탄소를 만들어 내는 과정임을 밝혀냈다. 또한 와인이 산패되는 것은 미생물인 초산균에 의한 것이라는 것도 밝혀냈다. 그는 저온살균법(Pasteurization)을 개발하여 와인의 산패를 막았다. 위키미디어 제공

라부아지에는 발효 원리를 화학적으로 밝혔고, 파스퇴르는 효모가 발효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 무렵 산업혁명이 한창이던 영국에서는 석탄으로 단단한 유리병을 만들어냈다. 여기에 밀봉력이 강한 코르크 마개도 사용되기 시작했다. 높은 압력과 고농도의 알콜에서도 견딜 수 있는 효모도 발견됐다.

와인메이커들은 와인을 병에 넣고 당분과 효모를 첨가해 재발효하면 더 높은 압력의 가스와 더 많은 기포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처음엔 재발효에 필요한 당분의 양을 알지 못해 와인이 폭발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샴페인하우스 노동자들은 철망으로 된 안면보호대를 써야 했을 정도다.

그러다가 상파뉴의 약사인 장 밥티스트 프랑수아가 당분과 압력의 관계를 밝혀냈고 당분측정기도 발명했다. 이제 5~6기압쯤 되는 샴페인 병 속의 압력을 해결하는 일만 남았다. 코르크 마개만으로는 완전하게 압력을 틀어막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자크송 샴페인하우스의 아돌프 자크송은 코르크 마개를 고정하는 뮈즐레(병목을 감싸는 철사)를 발명했다.

다양한 크기의 샴페인병(위 사진), 코르크마개(아래 왼쪽), 마개를 단단히 고정시켜주는 장치인 뮈즐레(철사를 6반퀴 반을 돌려 고정한다). 김성실 제공

이로써 마침내 상파뉴 방식이라 불리는 샴페인 양조법이 완성되었다. 이를 샴페인 방식, 즉 ‘메토드 상푸누아즈(Méthode Champenoise)’라 한다.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도 상파뉴 이외 지역에서는 ‘메소드 클래식’ 또는 ‘트래디셔널 메소드’라 표기해야 하며, 크레망 카바 프로세코 젝트 등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우연히 발견된 악마의 와인 샴페인은 발효의 원리, 효모 배양, 당분 측정, 단단한 유리병, 코르크 마개, 뮈즐레 등 과학 기술을 만나 화려하게 탄생했다. 와인의 역사에서 샴페인의 등장은 과연, 샴페인을 터뜨릴 만한 사건이다. 골칫거리 기포와 가스가 실은 축포였다니!

근데, 써놓고 보니 (어느 광고 문구처럼) 샴페인은 와인이 아니라 과학인가.

시대의창 대표ㆍ와인 어드바이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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