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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외무성, 원폭 전시회서 “후쿠시마는 빼라” 압력

입력
2020.03.03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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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등을 이유로 후원 중단 시사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 염두에 둔 듯

주최측 “표현의 자유 저촉” 강력 반발

라파엘 마리아노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 지난달 26일 2011년 동일본대지진 당시 폭발사고를 일으켰던 후쿠시마 제1원전을 시찰하고 있다. 후쿠시마=로이터 연합뉴스
라파엘 마리아노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 지난달 26일 2011년 동일본대지진 당시 폭발사고를 일으켰던 후쿠시마 제1원전을 시찰하고 있다. 후쿠시마=로이터 연합뉴스

일본 정부가 자국 민간단체가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개최할 예정인 원폭 관련 전시회에서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폭발사고 등의 내용을 다루지 말도록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전시회 주최 측은 “표현의 자유에 저촉하는 문제”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3일 도쿄신문에 따르면 일본 전국의 피폭자로 구성된 일본원수폭(原水爆)피해자단체협의회는 다음달 27일부터 한 달 간 유엔본부 로비에서 ‘원폭전’을 개최할 예정이다. 이 전시회는 5년마다 열리는 핵확산금지조약(NPT) 재검토회의에 맞춰 협의회가 외무성 후원을 받아 히로시마, 나가사키시와 공동 개최해 왔으며 이번이 4번째다. 이번 전시회에선 태평양전쟁 당시인 1945년 8월 원자폭탄이 투하됐던 히로시마, 나가사키시의 피폭 직후 모습과 피폭자 사진, 핵 폐기 촉구 메시지를 약 50장의 패널에 담아 전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외무성은 전시 내용 가운데 후쿠시마와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주제로 한 2장의 패널을 문제 삼고 있다. 이를 삭제하지 않을 경우 전시 후원 중단을 시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패널에는 2011년 동일본대지진 당시 발생한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경위와 이로 인한 많은 주민들이 대피 생활을 하고 있는 상황, 지금도 계속 증가하고 있는 원전 오염수 실태 등을 소개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협의회는 지난해 12월 전시회 후원을 외무성에 요청했으나 답변이 오지 않아 문의하니 원전 사고를 다룬 2장의 패널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고 밝혔다. 외무성은 5년 전인 2015년 전시회 당시만 해도 두 원전 사고를 다룬 내용이 포함됐음에도 후원했지만 갑자기 태도를 바꿨다.

이는 최근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제1원전의 오염수 처리 방식과 관련해 인근 주민들과 주변국의 반대와 우려에도 불구하고 해양 방류를 검토하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번 전시를 통해 오염수 방류 문제 등이 부각될 경우 오염수 처리와 관련해 국제사회의 부정적 여론이 강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기도 스에이치(木戶季市) 협의회 사무국장은 “외무성의 변명은 전시 내용이 NPT가 내걸고 있는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방해한다는 것”이라며 “그러나 후쿠시마나 체르노빌 원전 사고 내용을 제외하면 핵의 피해와 비인간성을 알리는 것이 어렵다”고 밝혔다. 협의회는 이번 문제는 표현의 자유와 관계돼 있는 것인 만큼 외무성의 후원을 받지 못하더라도 내용을 바꾸지 않고 전시회를 열 방침이다. 외무성은 도쿄신문의 관련 질의에 “협의회의 후원 신청을 심사 중”이라며 자세한 내용은 답변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시카와 유이치로 세이가쿠인대(聖學院大) 교수는 이와 관련해 “정부가 원하지 않는 내용의 전시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후원 거부는) 압력이 된다”며 “외무성은 대응을 결정할 경우 그 경위를 명확하게 설명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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