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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안도 모모후쿠의 라면 이야기(3.5)

입력
2020.03.05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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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오사카 컵라면박물관의 '라면의 아버지' 안도 모모후쿠 동상. flicker 사진.
일본 오사카 컵라면박물관의 '라면의 아버지' 안도 모모후쿠 동상. flicker 사진.

세계인은 2018년 한 해 1,030억6,200만 개의 라면을 소비했다. 75억 인구 1인당 13.7개를 먹은 셈인데, 라면이 판매되는 국가가 아직 70여개국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1인 소비량은 더 늘어난다. 아프리카 등 가난한 나라의 경우 라면은 지금도 귀한 음식이다. 최대 소비국은 중국(홍콩 포함)이고, 인도네시아 인도 일본 베트남 미국이 뒤를 잇는다. 한국은 38억 개를 소비해 8위를 차지했지만, 인구 대비 소비량은 수위권이다.(instantnoodles.org)

1958년 8월 25일 일본 기업인 안도 모모후쿠(安藤百福, 1910.3.5~2007.1.5)가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 ‘치킨 라멘’을 출시했다. 개당 가격은 35엔(2019년 기준 약 7,000원)으로 일본인이 즐겨 먹는 우동이나 소바 값의 6배에 달하는 비싼 식품이었다. 2016년 기준 일본의 라면 소매가는 약 120엔(2019년 기준 약 1,500원)으로 우동 값보다 훨씬 싸다. 라면의 대중화는 엄밀히 말하면 가격 경쟁력 덕이었다.

일본 제국 치하의 대만에서 태어난 모모후쿠는 직물가게를 운영하던 외조부의 도움으로 직물업으로 사업을 배웠고, 23세 때 일본의 리츠메이칸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그는 패전 후에도, 일본인 자산 몰수를 모면하기 위해 대만 국적을 유지하다가 66년 결혼을 하면서 일본으로 귀화, 대만식 이름 우바이푸(吳百福) 대신 아내(안도 마사코)의 성을 제 성으로 택해 안도 모모후쿠가 됐다.

그는 전후 미국의 원조 밀가루로 빵을 만들어 먹는 것보다 일본인이 즐겨 먹는 우동이나 소바를 간편히 먹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다 덴푸라(튀김)에 착안해 라면을 만들었다고 한다. 당시 일본 우동은 가업(家業) 수준의 소규모여서 식량난 해소에 역부족이었고, 유통기한도 짧았다. 그의 라면은 그 난제들을 일시에 해소할 수 있는 획기적인 인스턴트 음식이었다.

그는 1971년 스티로폼 재질의 컵라면도 개발, 라면을 넘어 70년대 인스턴트 식품 혁명을 선도했고,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74년 컵라면과 같은 방식의 인스턴트 쌀밥 ‘컵밥(cup rice)’을 출시하기도 했다. 훗날 자서전에 그는 “배가 부르면 세계 평화도 이뤄질 것”이라고 썼다. 말년까지 거의 매일 한 끼는 라면으로 해결했다는 그의 사인은 심장질환이었다. 최윤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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