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서 30년 이상 내과를 운영하고 있는 A원장은 신종 코로나 사태로 심각한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달 3일과 8일 기침과 발열 증세로 두 차례 병원을 방문한 환자가 25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내원 환자가 급격히 줄었기 때문이다. 확진자 방문 사실을 파악한 뒤 내부 방역 및 직원들 감염 검사까지 마쳤지만, 지역 맘카페 등에서는 여전히 ‘확진자가 갔던 병원’로 낙인이 찍혀 있다. A원장은 "확진자가 방문한 지 2주가 훨씬 지났고, 방역도 마쳐서 전혀 문제가 없는 상황"이라면서 "앞으로 동네 병원에서는 감기 환자 받는 것도 꺼리게 될까 걱정"이라고 호소했다.
신종 코로나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공개하고 있는 확진자의 동선을 구체적으로 공개하면서 피해사례가 빈발하고 있다. A씨처럼 생업에 타격을 입는 경우 외에, 확진자 주변의 사생활이 공개돼 괜한 오해를 사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에 감염병 방역을 위해 동선 공개가 불가피한 측면을 감안하더라도 합리적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일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보건복지부 장관은 감염병 환자의 이동 경로, 이동 수단, 접촉자 등을 공개해야 한다. 확진자 동선을 공개하는 이유는 밀접 접촉자를 신속히 확인하고 확산을 저지할 필요 때문이다.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에서 보건 당국은 확진자가 머물렀던 병원과 발생 지역에 대한 정보를 뒤늦게 공개하면서 3차 감염까지 발생하게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문제는 공개 범위와 방법, 공개 이후 대처 등에 대한 세부 지침이 없다는 점이다. 질병관리본부는 ‘증상 발현 하루 전 동선부터 공개하고 나머지는 역학 조사관이 판단한다’는 기준만 갖고 있다.
이러다 보니 지자체들이 공개하는 동선의 정보는 제각각이다. 서울의 경우, 동대문구에서는 음식점, 병원 등 상호명뿐 아니라 마스크 착용 유무까지 모두 공개한다. 하지만 노원구는 불필요한 정보 공개로 불안감과 공포심을 조장하는 것도 경계하자는 취지에서 마스크를 쓴 채 방문한 경우 확진자 동선에서 제외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합리적인 선의 통일적인 공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태형 순천향대 감염내과 교수는 "보건당국이 시설 폐쇄나 소독 등을 매우 엄격하게 하는 편이라 방역 이후에는 일반인들이 방문을 꺼려야 할 이유가 없다”면서 "환자의 인권 침해 문제까지 고려해 방역에 필요한 적정 수준의 공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안하늘 기자 ahn70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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