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예(禮), 의(義), 염(廉), 치(恥)라는 네 개의 벼리(四維)가 받치고 있다. 그 중 한 줄기가 끊어지면 나라가 기울고, 두 줄기가 끊어지면 나라가 위태롭게 되며, 세 줄기가 끊어지면 나라가 엎어지고, 네 줄기가 다 끊어지면 나라가 망한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편작(扁鵲, BC 407~BC 310)은 전국 시대의 명의(名醫)다. 지금의 하북성 출신으로 원래 성씨는 진(秦), 이름은 월인(越人)이다. 그는 한의학의 전통적 진단 방법이 되는 ‘사진법(四診法)’, 즉 망(望, 보다)ㆍ문(聞, 듣다)ㆍ문(問, 묻다)ㆍ절(切, 맥을 짚다)의 기초를 닦았다. 워낙 의술이 고명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황제(黃帝) 시대의 전설적 명의인 ‘편작’에 비유하여 그 이름을 그대로 따서 불렀다.

사마천은 ‘사기ㆍ편작창공열전(扁鵲倉公列傳)’을 지어 그 의술을 칭찬하며 “세상에 맥(脈)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은 편작 덕택이다”라고 하였다. 아울러 그에 관한 여러 가지 일화를 실었다. 다만 아쉽게도 한의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필자에게 어려운 감이 있었는데 ‘전국책(戰國策)’에 실린 이야기는 비교적 이해하기 쉬웠다.

편작이 진(秦)나라 무왕을 알현했는데 무왕이 병의 상태를 보여주자 그가 치료해 주겠다고 나섰다. 편작이 치료 준비를 위하여 자리를 비운 사이, 왕의 측근들이 말했다. “임금님의 병환은 귀의 앞쪽과 눈의 아래에 있어 치료한다고 해서 반드시 낫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귀가 안 들리고, 눈이 안보일 수가 있습니다.” 편작을 다시 만나자 무왕은 이런 정황을 말하며 치료를 꺼리는 기색을 보였다. 편작이 화를 내며 석침을 던져 버리고 말했다. “임금님은 의술을 아는 사람과 상의하고 나서 의술을 모르는 사람의 말을 들어 치료를 망쳐버렸습니다. 만일 진나라의 정치를 이렇게 한다면 일거에 나라를 망칠 것입니다.”

편작은 세상에 알려진 명의이다. 병을 치유하려면 당연히 마음을 비우고 그의 지시에 따라야 한다. 그러나 진나라 무왕은 편작의 말을 듣고 나서 다시 측근의 말을 듣자 우왕좌왕 하는 태도를 보였다. 나라를 다스리는 일도 병을 다스리는 이치와 마찬가지다. 정말 답을 찾을 생각이면 전문가와 상담하고 그 말을 따라야 한다. 편작은 병을 치료하지 못한 것도 화가 났지만 임금에게 정신 자세를 고치라고 충고한 것이다.

‘편작창공열전’을 보면 의술이 아무리 고명해도 고칠 수 없는 불치병으로 6가지를 열거하였다.

첫 번째는 ‘교만방자 하여 도리를 따지지 않는 것(驕恣不論於理)’. 두 번째는 ‘몸을 혹사시키고 재물을 소중히 여기는 것(輕身重財)’. 세 번째는 ‘먹고 입는 것을 적절하게 조절하지 못하는 것(衣食不能適)’. 네 번째는 ‘음과 양을 문란하게 하여 오장의 기운을 흩뜨리는 것(陰陽幷藏氣不定)’. 다섯 번째는 ‘몸이 극도로 쇠약해져 약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形羸不能服藥)’. 여섯 번째는 ‘무당의 말을 믿고 의원을 믿지 않는 것(信巫不信醫)’이다. 이 여섯 가지 불치병 중 하나라도 있다면 병을 치료하기가 어렵다.

6가지 불치병 가운데 첫 번째와 마지막이 의미심장하다. 섭생(攝生)과 관련 없어 보이기에 더욱 그렇다. 당시에 진나라 무왕과 같은 ‘불치병’ 환자가 많았던 모양이다. 불치병 이야기와 ‘전국책’ 일화를 겹쳐보면, 편작은 병을 치료받고자 하는 자의 태도를 강조하는 동시에 치국도 치병과 같은 이치라고 말한 셈이다.

춘추시대 제(齊)나라의 명재상이었던 관중(管仲, BC 723~BC 645)은 부국강병을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삼아 수공업과 국내외 교역 활성화에 진력했다. 요새말로 하면 경제 최우선 정책을 내건 사람이었다. 그래서 어떤 이는 관중을 중국 최초의 중상(重商)주의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후세에 그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관자(管子)라고 부르고 그의 언행이 담긴 책도 ‘관자’라고 했다.

당시 여타의 권력자와 비교해 볼 때 관중의 정책은 분명 탁월했지만, 지금 와서 보면 지극히 상식적인 것도 사실이다. 예컨대 세상의 어떤 지도자도 약한 군대, 가난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공언하는 사람은 이제껏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제력이 우선이라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다. 이렇게 보면 관중과 작금 정치인들의 생각이 그다지 다른 것은 아니다. 다만 한 지점에서 한국의 집권층과 관중의 잣대는 크게 달라 보인다.

‘관자’의 첫 대목인 목민(牧民)편에 이런 말이 있다. “나라는 예(禮), 의(義), 염(廉), 치(恥)라는 네 개의 벼리(四維)가 받치고 있다. ‘예’란 사람마다 절도(節度)를 지키는 것이며 ‘의’는 준칙을 따르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것이며 ‘염’이란 방정(方正)해서 자기 잘못을 감싸거나 숨기지 않는 것이며 ‘치’는 부끄러움을 알고 악행에 동참하지 않는 것이다. 그중 한 줄기가 끊어지면 나라가 기울고, 두 줄기가 끊어지면 나라가 위태롭게 되며, 세 줄기가 끊어지면 나라가 엎어지고, 네 줄기가 다 끊어지면 나라가 망한다.”

우리의 ‘벼리’는 지금 어떤 상태인지 궁금하다. 아니 그보다 현 정권이 네 개의 벼리를 잣대로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정권이 네 개의 벼리 역할을 해준다면 국민은 기꺼이 나라 일에 나설 것이다. 괴질의 기세가 점점 사나워지고 있다. 편작과 관중의 고사를 들춰보니 더욱 심란해진다.

박성진 서울여대 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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