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공개 않고 일관성 없는 정책
각종 대책 신뢰 잃고 소문만 무성
화장지ㆍ생리대ㆍ라면 사재기 확산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잖아요. 미리 준비해 두려고 왔는데 여기도 품절이네요.”
지난달 29일 일본 도쿄 미나토구의 한 약국에서 마주친 40대 여성은 텅 빈 화장지 진열장을 바라보더니 한숨부터 쉬었다. 매장 직원은 “최근 마스크와 화장지를 제작하는 원료가 같다는 소문이 돌면서 화장지 공급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하는 손님들이 사흘 전부터 몰려 들고 있다”고 했다. 12개들이 두루마리 화장지와 5개들이 곽 티슈는 오전에 문을 열자마자 동이 난다고 전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 우려로 일본에서 마스크와 손 소독제 외에 화장지, 생리대 등 일상용품의 품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화장지의 원재료를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어 코로나19 영향이 장기화할 경우 일본의 화장지 생산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소문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급속히 번진 탓이다. 이에 약국 등의 텅 빈 화장지 진열대 사진이 SNS에 올라오면서 사재기에 동참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정부와 관련 단체는 풍문 진화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화장지 제조업체 단체인 일본가정지공업회는 “중국으로부터 원료 수입량은 1.3%에 불과하다”고 발표했고,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공급량이 충분하기 때문에 냉정한 구매를 당부하고 싶다”고 밝힐 정도다.
이 뿐이 아니다. 대형 슈퍼에선 쌀과 인스턴트 라면 등 보존기한이 긴 식품들의 구매도 늘고 있다. 미나토구 대형슈퍼의 직원은 “코로나19로 외출ㆍ외식을 자제하고 있는 데다 태풍 때처럼 만약을 위해 식료품을 충분히 사두려는 손님들이 많다”고 귀띔했다.
이런 사재기 열풍은 일본 정부가 자초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올 1월 국내 감염자 발생 후 정부가 도쿄올림픽을 의식해 감염 확인 검사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이 나오기 시작했고, 코로나19와 관련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이는 ‘벚꽃을 보는 모임’ 사유화 등 아베 정권의 장기집권 폐해와 맞물리면서 내각 지지율 급락을 가져왔다. 지난달 22~23일 실시된 산케이(産經)신문 여론조사에선 지지율이 전달 대비 8.4%포인트 하락한 36.2%로 곤두박질쳤다.
아베 총리의 초조함은 이후 조령모개(朝令暮改)식 정부 방침에서도 드러난다. 25일 정부의 코로나19 기본방침을 발표하면서 대형 이벤트 개최와 관련해 주최 측의 자율 결정을 권고했으나 하루 만에 2주 간 중지나 연기ㆍ축소를 요청했다. 27일엔 이달 2일부터 전국 초·중·고교 임시휴교를 요청하더니 28일엔 현장의 불만이 제기되자 “학교와 지역에서 유연하게 판단하라”며 꼬리를 내렸다. 이처럼 정부 대응에 대한 신뢰가 마련되지 않은 채 정부가 충분한 설명 없이 대책을 쏟아내자 사회 내 잠재적인 불안이 드러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