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미 정신분석학 교수의 ‘신종 코로나 진단’
‘사회적 거리 두기’와 함께 ‘가족거리 좁히기’ 필요
‘남 탓’ 가장 미숙한 자기방어… 나부터 반성해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한 공포와 분노는 우리 자신에 대한 성찰과 반성이 있어야 극복할 수 있습니다.”
한국인의 집단 심리와 사회현상을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풀어내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이나미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정신분석학) 교수는 신종 코로나 사태를 이렇게 진단했다.
이 교수는 신종 코로나 사태를 통해 우리의 삶을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신종 코로나는 분명 인간에게 해가 되는 바이러스이지만, 이 바이러스가 우리에게 던진 경고는 다름 아닌 삶의 방식과 가치의 재정립”이라며 “그간 우리는 1년에 해외여행을 얼마나 자주 가고, 다방면으로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는 사람을 성공한 사람이라고 치켜세웠다”고 말했다.
그는 신종 코로나의 지역사회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선 국민들에게 요구되는 ‘사회적 거리 두기’와 함께 ‘가족 거리 좁히기’의 실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신종 코로나 때문에 여행, 모임 등을 하지 못해 답답하다는 이들이 많지만, 따지고 보면 가지 않아도, 만나지 않아도 삶에 별반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오히려 이번 기회에 가족들과 함께 보내면서 가족에 대한 소중함과 가치를 발견하길 바란다”고 권했다.
‘남 탓’ 인간의 가장 미숙한 자기방어
정신분석학에 따르면 신종 코로나처럼 대규모 감염사태가 발생하면 사람들은 공포와 불안, 분노를 해소하기 위해 ‘비난’할 대상을 찾는다. 14세기 2차 흑사병이 유행했을 때 ‘유대인들이 우물을 오염시켜서 흑사병이 발생했다’는 거짓소문이 돌아 많은 유대인들이 학살당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 교수는 “인간은 극도의 불안감에 놓이면 ‘남 탓’을 통해 위기를 벗어나려고 하는데 남 탓은 인간이 갖고 있는 가장 미숙하고 낮은 수준의 자기방어”라고 지적했다. 그는 “대구ㆍ경북 등 지역사회에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신종 코로나를 전파한 신천지예수교회는 이번 사태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면서도 “남의 면전에서 재채기나 기침을 마음대로 하고, 화장실에서 일을 본 후 손 한번 제대로 씻지 않고 지낸 우리 자신에 대한 반성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위기 상황에서 우리사회를 이끌 ‘큰 어른’이 실종된 것에 안타까워했다. 그는 “과거에는 김수환 추기경이나 성철 스님 등 사회적 어른들이 위기 때마다 나서 국민들을 위로하고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제시했는데 지금은 이런 어른들이 없다”며 “1894년 유대계 프랑스인 육군장교가 반역 혐의로 재판을 받은 이른바 ‘드레퓌스 사건’ 당시 신문에 ‘나는 고발한다’라는 공개장 형식의 글을 발표해 프랑스 군부를 맹렬하게 비판했던 소설가 에밀 졸라와 같은 지성인이 사라진 것도 사회적으로는 매우 슬픈 일”이라고 말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도 호소했다. 이 교수는 “청도 대남병원 등 정신질환자,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들이 신종 코로나에 집단으로 감염됐다”며 “우리가 무시하고, 바라보지 않았던 이들을 방치할 경우 그들은 물론 우리 모두 불행해질 수 있음을 인식하고, 이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실천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김치중 기자 cj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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