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아프가니스탄 무장조직 탈레반이 18년여에 걸친 무력 충돌을 종식하는 평화합의에 서명했다. 백악관은 미국의 최장기 전쟁인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끝낼 발판이 마련됐다고 기대감을 표시했지만 아직 완전한 평화 정착까지는 난제가 산적해 있다는 평가가 많다.
29일(현지시간) AFP통신 등에 따르면 양측 대표인 잘마이 칼릴자드 미 아프간 특사와 탈레반 공동창설자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는 이날 카타르 도하에서 만나 최종 합의서에 서명했다. 탈레반이 무력 행위를 중단한다는 약속을 지킬 경우 미국은 그 대가로 아프간에 파견된 미군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의 국제동맹군을 14개월 안에 모두 철군한다는 내용이다. 양측은 “아프간 내부 당사자 협상에 따라 어떤 형태의 정부가 수립되더라도 미국과 탈레반은 긍정적인 관계를 추구하기로 다짐한다”고 선언했다.
‘도하합의’에 따라 미군은 1단계로 이날부터 135일 이내에 아프간 20개 기지 가운데 5곳의 주둔 병력을 8,600명까지 줄일 예정이다. 현재 아프간에 주둔하는 미군은 1만2,000여명 정도다. 또 미국은 향후 군사력으로 아프간을 위협하거나 내정에 간섭하지 않고 올해 8월27일까지 탈레반 지도부에 대한 경제 제재를 해제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신뢰 확인 차원에서 오는 10일까지 국제동맹군과 아프간 정부군에 수감된 탈레반 대원 5,000명과 탈레반에 포로로 잡힌 아프간군 1,000명도 교환한다.
탈레반은 1980년대 탄생을 함께한 알카에다와 거리를 두기로 했다. 구체적으로 알카에다 등 무장조직이 모병, 훈련, 자금 조성을 하지 못하도록 하고 이들의 이동을 돕거나 법적 서류를 제공하지 않기로 했다. 또 이들 무장조직이 아프간을 활동 무대로 삼도록 방조하지 않는다는 약속도 합의에 포함됐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합의 직후 “탈레반이 이슬람 극단주의 조직들과 관계를 끊는 의무를 지키기 바란다”고 재차 압박했다.
합의가 제대로 이행되면 2001년 9ㆍ11 테러 이후 시작된 미국과 탈레반의 군사적 충돌이 마무리될 수도 있다. 미국은 아프간 전쟁에 직접 전비만 약 7,600억달러(약 920조원)를 쏟아 부었지만 최근 몇 년간 탈레반 세력은 되레 확대됐다. 이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아프간 전쟁을 ‘끝없는 전쟁’이라 비판하며 철군을 공약해왔다. 그는 이날 백악관 성명을 통해 “우리는 마침내 미국의 최장기 전쟁을 끝내고 우리 군대를 귀환시키려 노력하고 있다”며 “이 약속들은 새로운 아프간의 항구적 평화를 향한 중요한 걸음”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르다는 지적이 나온다. 무엇보다 탈레반이 합의를 어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미군과 나토군이 모두 철수한 뒤 다시 아프간 장악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협상에 아프간 정부가 빠진 것도 불안 요소다. 카터 말카시안 전 미 합동참모본부 보좌관은 AFP에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 간 정치적 합의가 이뤄지기 전에 미군이 철수하면 상황이 망가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트럼프 행정부도 이러한 변수에 촉각을 세우는 모습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우리가 한 약속에 대해 구체적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합의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탈레반의 약속 준수를 면밀히 주시하면서 미군 철수 속도를 조절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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