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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그깟 마스크’가 아니었다

입력
2020.02.29 04:3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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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내가 알아서 결정해야 한다는, 다소 허탈한 생각에 이르렀다. ‘그깟 마스크’가 아니었다. 사진은 서울 광화문 출근길의 마스크를 쓴 시민들. 왕태석 선임기자
결국 내가 알아서 결정해야 한다는, 다소 허탈한 생각에 이르렀다. ‘그깟 마스크’가 아니었다. 사진은 서울 광화문 출근길의 마스크를 쓴 시민들. 왕태석 선임기자

자정을 넘긴 시간 휴대폰의 요란한 진동에 눈을 떴다. 모두 다섯 차례, 긴급 재난문자였다. 코로나19 확진자들의 이동 경로를 알려줬다. 이 시간대에 알릴 일일까 싶었지만 그만큼 심각한 상황이기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잠을 설친 김에 뉴스를 검색하다 의아한 내용을 접했다. 상반된 주장이 전문가들로부터 나오고 있었다. 코로나19의 유전자 분석 결과 같은 심오한 학술 주제가 아니었다. 너무 뻔해 보여 ‘그깟 것’ 정도로 여겨지던 마스크에 대해서였다.

그날 확진자 동선을 피해 동네 상점에 다녀오는 내내 혼란스러웠다. 집을 나서며 당연히 마스크에 손이 갔다. 미세먼지를 피하려 사놓은 두 종류의 마스크가 조금 있었다. 덴탈과 KF80. 모두 일회용이고 코로나19 예방에도 좋다고 알고 있었다. 문득 환자가 아닌 일반인은 마스크를 쓸 필요가 없고, 쓰면 해로울 수도 있다는 대목이 기억났다. 마스크 착용, 상식 아니었나?

생각보다 마스크에 대한 ‘진실과 거짓’을 다루는 자료가 많았다. 대부분 의약 분야의 전문가가 실명으로 설명했기에 신뢰감이 생겼다. 하지만 서로 다른 내용에서 난감해졌다. 국내 질병관리본부나 의약 학회들이 제공하는 자료에서 마스크 착용은 기본이었다. 그런데 전문가 A(또는 A집단)는 세계보건기구(WHO)나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심지어 국내 질병관리본부의 예방 수칙을 일일이 제시하며, 마스크 착용은 기침ㆍ발열ㆍ호흡 곤란 등의 증상이 있는 사람과 그 가족, 병원 의료진과 방문객, 많은 사람과 접촉하는 직업종사자 등에게만 권장된다고 했다. 각 수칙을 보니 과연 그렇게 쓰여 있었다.

그럼 동네 상점에 가는, 아직 건강해 보이는 나는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되는 게 아닌가. 확진자의 동선도 의미가 없어졌다. 게다가 오염된 손으로 마스크를 만지면 마스크가 병원체의 배양소가 된다. 간지럽기도 하고 흘러내리기도 해서 만질 수밖에 없다. 그래, 쓰지 말자.

하지만 전문가 B는 혹시 모를 감염자로부터의 보호를 위해 밀폐 공간에서 마스크 착용은 필수라고 강조했다. 이왕이면 KF80이 좋단다. 아무래도 쓰는 게 낫겠지? 마스크에 최대한 손을 대지 않으면서 (사실 몇 차례 만졌다) 1시간 만에 집에 왔다.

마스크가 다소 축축해졌지만 버리기엔 아까웠다. 마침 전문가 C는 KF80의 경우 침방울을 막는 용도라면 몇 차례 재사용해도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전문가 D는 그동안 전반적으로 재사용이 금기시돼온 면 마스크도 소독만 잘하면 안 쓰는 것보다 낫다고 설명했다.

결국 내가 알아서 결정해야 한다는, 다소 허탈한 생각에 이르렀다. ‘그깟 마스크’가 아니었다. 적지 않은 물량이 있지만 국민에 제대로 보급되지 않는 현실이 가장 한탄스럽지만, 간단한 생활수칙마저 헷갈리게 만드는 정보들도 문제다. 감염학, 바이러스학, 역학, 예방의학 가운데 무엇이 코로나19의 전문분야인지, 의사회와 약사회의 일부 엇갈리는 의견을 어떻게 봐야 할지 모르겠다. 중국인 입국 제한을 두고 갈라진 학회들의 주장도 그렇다. 국가적 재난 상황일수록 국민에게 정보와 메시지를 전달하는 채널이 간결해지면 좋겠다. 전문가들이 먼저 모여 치열하게 논의한 후 정리된 내용을 공개할 수는 없을까.

나아가 그동안의 정책 제언이나 대국민 담화를 넘어서는 과학적 전망과 대책이 아쉽다. 사스와 메르스 사태 당시 왜 해당 바이러스의 생태와 발병 메커니즘을 잘 아는 전문가들이 없는지 한탄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지금은 코로나19를 꿰고 있는 전문가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바이러스의 유전적 특성에 기반해 향후 전파 추이를 과학적으로 예측하는 시뮬레이션 결과 정도가 나왔을 법한데 아직 잠잠하다. 전문적인 연구 결과가 궁금하다.

김훈기 홍익대 교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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