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 외교장관 회담 무산, 中 지방정부의 한국인 입국자 격리 계속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유탄이 외교부를 향하고 있다. 외교부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중국 지방정부의 한국인 격리 조치가 계속되면서다. 야당과 보수진영의 압박에도 정부는 ‘중국인 입국 금지’ 조치를 취하지 않는 등 우호로 일관했지만 중국에 뒤통수를 맞은 셈이어서 실망과 비판이 커지고 있다. 이 와중에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유럽 방문 적절성, 한영 외교장관회담 취소 여파도 계속 논란이다.
외교부에 따르면 26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강경화 장관과 도미닉 라브 영국 외무장관 간 회담은 불발됐다. 회담 직전 영국 측이 “라브 장관의 개인적 사정에 따라 불가피하게 회담을 하지 못하게 됐다”고 알려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식 발표된 외교장관회담이 무산된 일은 이례적이다. 영국의 외교 결례가 강 장관과 한국 정부를 무시했기 때문 아니냐는 지적이 이어졌다.
특히 27일 중국 지방정부 5곳의 한국인 입국 절차 강화 조치가 이어지는 상황과 맞물려 외교부를 향한 공세가 거세졌다. 중국과 영국에 외교적 수모를 당했다는 지적이다. 강 장관이 전날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과 통화하며 “과도하다”고 항의했지만 왕 부장은 “각국이 불필요한 국가 간 이동을 줄이는 것이 (코로나) 감염 확산 차단에 매우 중요하다”고 버티면서 상황은 악화했다.
당장 중국의 호의를 기대했던 한국 정부가 순진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 전직 외교관은 “중국은 늘 외교적 신의보다 국익을 우선시하는 나라인데 정권 차원의 이해가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일례로 박근혜 정부는 임기 초반부터 중국에 외교력을 집중해 한때 “역대 최상의 한중관계를 가져왔다”고 자찬했다. 그러다 2016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배치 결정을 내리자 중국은 안면을 바꿔 한한령(限韓令) 등 대대적 경제 보복에 나섰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언제든 이해관계 변화에 따라 중국은 태도를 바꿀 수 있다는 점을 정부가 예상하지 못한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외교부는 속으로 끙끙 앓고 있다. 장관은 물론 주중대사, 차관보 등 각급 외교 채널을 통해 중국에 항의, 설득하고 있으나 가시적 성과는 보이지 않아서다. 특히 회복세에 있었던 한중관계가 틀어질 경우 이를 재복구하는 데 들어가는 외교ㆍ경제 비용도 고려해야 한다는 게 한국의 아킬레스건이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중국은 한국의 인접국이자 최대교역국이면서 동시에 대북정책의 핵심 행위자”라며 “보수정권이라도 중국인 전면 입국 금지 조치는 쉽게 취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우리는 방역문제를 한중관계와 연계했고, 중국은 방역과 외교를 분리하는 등 접근법이 달랐다”며 “코로나 사태가 더 엄중해졌기 때문에 우리 이익의 중점을 중국과의 외교ㆍ경제관계에 두기보다 국민 건강을 위한 방역 조치에 중점을 두는 식으로 조절이 필요해 보인다”고 조언했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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