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찬실이는 복도 많지’ 김초희 감독 “가진 것 하나 없어도 앞으로 나갈 힘만 있으면 복”

알림

‘찬실이는 복도 많지’ 김초희 감독 “가진 것 하나 없어도 앞으로 나갈 힘만 있으면 복”

입력
2020.02.28 04:30
24면
0 0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주인공을 통해 삶을 일으켜 세우는 건 꿈이라고 말한다. 찬란 제공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주인공을 통해 삶을 일으켜 세우는 건 꿈이라고 말한다. 찬란 제공

막 일자리를 잃었다. 다른 일자리 구하기도 쉽지 않다. 나이는 어느덧 40대인데, 모아놓은 돈도 없다. “복도 지지리 없다”며 한숨이 나올 판.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3월 5일 개봉)의 주인공인 영화 프로듀서 찬실(강말금)이가 딱 그런 상황이다. 그런데도 제목은 ‘복도 많지’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3관왕(한국감독조합상, CGV아트하우스상, KBS독립영화상)을 차지한 이 영화는 품었던 꿈을 되살릴 수 있다면 복된 삶이라고 말한다. 최근 서울 사직동 한 카페에서 만난 김초희(45) 감독은 “가진 게 많고 일이 잘 풀리면 복이 많다고들 하지만 앞으로 나갈 수 있는 힘만 있어도 복”이라고 말했다.

영화는 김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다. 김 감독은 홍상수 감독의 프로듀서로 7년 넘게 일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2008)부터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2015)까지 8편을 함께 했다. 2015년 프로듀서 일을 그만뒀을 때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막상 나와보니 진짜 할 게 없었다”고 한다. 저예산에다 시나리오가 촬영 당일 아침에 나오는 홍 감독과 함께 일한 경력은 영화계 구직에 별 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다. “요리에 자신 있어 반찬 장사를 할까 고민”하기도 했다. 배우 윤여정의 제안으로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2018)에서 사투리 담당 일을 맡은 뒤 마음이 달라졌다. “내가 할 건 영화 밖에 없다”고 다시 생각하게 됐다. 마흔 넘어 감독 데뷔한 사연이다.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의 김초희 감독. 홍상수 감독의 프로듀서로 '잘 알지도 못하면서' 등 8편을 만들었다. 등우상희 스튜디오 제공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의 김초희 감독. 홍상수 감독의 프로듀서로 '잘 알지도 못하면서' 등 8편을 만들었다. 등우상희 스튜디오 제공

그래서 ‘찬실이는 복도 많지’에는 영화와 함께 했던 김 감독의 삶이 드러난다. “하나도 안 닮은” 장국영 유령(김영민), 1990년대 영화월간지 키노, 정은임의 FM영화음악이 등장한다. 엉뚱하고 발랄하면서도 처연하고 아련하다. 실직 등 삶의 위기를 겪어본 이라면 찬실이에게 자신을 많이 포갤 듯하다.

김 감독의 원래 꿈은 소설가였다. 대학 1학년 여름 시작한 비디오대여점 아르바이트는 내리 6년 6개월하면서 영화광이 됐다. 최신작을 모두 훑었고, 나중엔 “꽂혀 있는 순서대로” 다 봤다. 아르바이트 4년째쯤 되던 때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의 영화 ‘집시의 시간’을 만났다. “감독이 되고 싶어서 미칠 것”만 같아서 “공부든 뭐든 열심히 하는 사람”이 됐고 곧 프랑스로 유학, 영화이론을 공부했다. 2007년 프랑스에서 촬영한 ‘밤과 낮’의 연출부로 합류하며 홍상수 감독과 인연을 맺었다.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뭔가 만들어지는 현장을 보고 홀딱 반해 보따리를 싸서” 귀국했다.

20년가량 먼 길을 돌고 돌아 감독이 된 그는 오히려 뒤늦게 메가폰을 쥐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 “감독은 결정할 것이 너무 많아서 스스로 단단하지 않으면 못 할 직업”인데 “젊어서 시작했으면 금방 포기했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전 복이 많아요. 어렸을 때 어렵게 자라서 일찍 독립했고 제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었어요. 예전엔 영화만이 중요했는데, 이제는 삶이 더 궁금해요. 영화가 삶의 일부라는 걸 이제야 깨달았어요.”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그래서 본인 이야기다.

참, 이 영화는 ‘기생충’과는 ‘악연’이 있다. 기차가 터널을 지나 설경을 맞이하는 마지막 장면을 새로 찍기로 했다. 촬영감독이 ‘기생충’ 촬영팀 소속이라 쉬는 날만 기다리던 중에 마침 쉬는 날 눈이 왔건만, ‘기생충’팀도 기다렸던 눈이 내린다며 그날 촬영을 해버렸다. 물론, 정색하는 건 아니다. “봉준호 감독님이 아카데미상 받을 때 진짜 많이 울었다”며 웃었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