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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희 춤은 예술이었나, 일제 프로파간다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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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희 춤은 예술이었나, 일제 프로파간다였나

입력
2020.02.28 04:3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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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이사도라 던컨’이라는 무용가 최승희. 한국일보 자료사진
‘조선의 이사도라 던컨’이라는 무용가 최승희. 한국일보 자료사진

‘조선의 이사도라 던컨’이라 불리던 무용가 최승희는 최초의 한류스타였다. 조선과 일본을 넘어 미국과 유럽에까지 명성을 떨쳤다. 조선 최초의 전문 무용수로서 조선 무용을 선구적으로 개척하고 세계적 수준까지 끌어올렸다고 평가 받는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에겐 ‘친일’이라는 불명예가 따라다닌다. 식민지 조선인이 ‘동양의 무희’로 활동하는 건 일본 군부의 지원 없이는 불가능했다. 최승희의 공연 중 상당수가 일본군 위문 공연이었고, 최승희는 군용 비행기 한 대 값에 버금가는 공연 수익금을 헌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요컨대 그의 춤은 ‘대동아공영’을 선전ㆍ홍보하는 도구로서 일제에 복무했던 셈이다.

최승희는 해방 뒤 과거 친일 행적이 문제가 되자 월북했다. 이후 북한 김일성 정권의 후원 하에 예술 활동을 이어갔다. 그의 춤은 또 다시 사회주의 이데올로기 선전을 위한 것으로 전환됐다. 1955년에는 북한 예술인에게 최고 영예인 ‘인민배우’ 칭호까지 받았다.

그렇다면 최승희 무용의 본질은 예술이었을까, 프로파간다였을까. 최승희라는 존재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후대의 평가대로 최승희의 무용을 민족주의적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더 본질로 들어가면, 제국주의라는 강력한 국가 권력 아래에서 예술가, 특히 여성 예술가의 주체적 예술 행위가 과연 가능하기는 했을까.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제국의 아이돌 

 이혜진 지음 

 책과함께 발행ㆍ336쪽ㆍ2만원 

‘제국의 아이돌’은 최승희를 비롯해 리샹란, 레니 리렌슈탈, 마를레네 디트리히 등 20세기 초 제국의 시대에 활약한 여성 스타 4인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들의 예술 행위가 어떻게 프로파간다에 복무했는지 살펴보면서 국가 이데올로기 속에 놓인 개인의 딜레마를 추적한다. 이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다국적 정체성을 강요받았고, 전전과 전후에 위상이 극과 극으로 달라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일본인 야마구치 요시코는 중국인 리샹란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한 만주국 최고 스타였다. 일본 패망 뒤 위기에 처했으나 극적으로 이를 극복하고 나중에는 일본에서 3선 참의원을 지냈다. ‘의지의 승리’ ‘올림피아’ 같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역작들을 남긴 영화 감독 리펜슈탈은 그러나 일생 동안 나치에 협력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히틀러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뒤 할리우드 섹시 심벌로 등극한 디트리히는 그 반대로 독일에서 배신자로 낙인 찍혀 평생 고국에 돌아갈 수 없었다.

이들의 드라마틱한 행적을 재구성하는 일은, 국가 권력과 문화 권력, 그리고 대중의 감수성이 어떻게 공모 관계를 맺었는지를 살펴보는 일이기도 하다. 국가와 예술에 관한 담론은 차지하고라도, 이런 작업이 지금 우리에게 유효한 건 여전히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프로파간다에 노출돼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과거 제국주의적 지배 방식이 21세기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기초가 됐다고 진단한다. 그리고 민주주의라는 형태의 ‘지배 체제’ 아래에서 프로파간다는 대중매체를 통해 좀 더 교묘하고 은밀한 방식으로 유통되고 무의식적으로 이식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념들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존재해야 할까. 이 책이 독자에게 건네고자 하는 궁극적인 질문이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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