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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간 쓴 185조 ‘무색’… “경쟁 압박 줄여야 아이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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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간 쓴 185조 ‘무색’… “경쟁 압박 줄여야 아이 낳는다”

입력
2020.02.27 01:0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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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 한 병원의 신생아실. 연합뉴스
서울 시내 한 병원의 신생아실. 연합뉴스

2년 연속 1.0명에도 못 미치는 세계 최저, 사상 최저 수준의 출산 성적표를 받아든 정부의 인구정책에 근본적인 회의론이 높아지고 있다. 14년간 185조원을 쏟아 부었지만, 최악의 저출산 현실은 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단기적이고 미시적인 처방에서 벗어나 근본적으로 ‘경쟁이 덜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갈수록 떨어지는 출산율 

정부가 저출산 문제에 본격적으로 매달리기 시작한 시점은 합계출산율 1.09명을 기록한 2005년이었다. 그 해 ‘저출산ㆍ고령사회기본법’을 제정한 정부는 이듬해부터 5년 주기로 그동안 세 차례의 ‘저출산ㆍ고령사회기본계획’을 마련했다. 처음에는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보육지원 중심이었던 기본계획은 점차 맞벌이 가구, 예비부부 등으로 대상이 확대됐으며, △보육ㆍ교육비 지원 △보육시설 확충 △청년ㆍ예비부부 주거지원 등이 차례로 추가됐다.

여기에는 막대한 예산이 투입됐다.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1~3차 기본계획으로 지난해까지 총 185조원을 사용했다. 1차 20조원, 2차 61조원, 3차 104조원으로 규모는 갈수록 늘고 있다. 지난해에는 96개 과제에 약 32조원이 투입돼 ‘20~40대의 안정적 삶의 기반 조성’(14조6,000억원), ‘촘촘하고 안전한 돌봄체계 구축’(12조1,000억원) 등에 쓰였다.

하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1차 계획이 시작된 뒤 2007년(1.26명), 2012년(1.30명) 등 합계출산율이 소폭 반등한 해가 있긴 하지만, 지금의 인구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합계출산율(2.1명)에 한참 미치지 못하고 있다. 2015년 이후론 매년 합계출산율이 감소해 2018년부턴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운 ‘0명대 출산율’을 2년 연속 기록했다.

[저작권 한국일보] 강준구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강준구 기자

 ◇“돈 쥐어주는 것으론 한계… 경쟁 줄여야” 

전문가들은 그간의 저출산 정책이 미시적인 수준에 머물렀다고 지적한다. 이삼식 한양대 정책학과 교수는 “지금까지 정책은 개인의 출산 의사결정 구조에 초점을 맞춰 당장 눈에 보이는 걸 처리하는 식이었다”고 평가했다. “보육에 돈이 든다고 하면 보육비를 지원하고, 아이 키울 시간이 없다고 하면 육아휴직을 주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그는 “돈을 많이 쓰지 않으면서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거시적 정책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에 출산율을 높이려면 무엇보다 ‘덜 경쟁적인 사회’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영란 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경제 여건이 비슷해도 출산 여부가 달라지는 것을 보면 돈이 문제가 아니다”라며 “무엇보다 한국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경쟁 압박을 줄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삼식 교수도 “한국은 노동시장에서 학벌 차별이 심하기 때문에 사교육 시장이 커지고 양육 비용이 급증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조영태 서울대 교수는 “복지와 젠더 중심의 저출산 정책은 한국의 맥락에 맞지 않는다”며 “서울에 모든 자원이 집중돼 청년들 간 경쟁이 심화되는 것이 근본 문제”라고 지적했다.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가 본격적으로 65세 이상에 편입되는 올해부터 정부는 ‘노동력 절벽’에도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다. 정부 관계자는 “지난해 1기 인구구조 태스크포스(TF)에서 고령자 계속고용 등 생산연령인구 확충 방안을 내놨다”면서 “2기 TF에서도 여러 대책을 발굴 중”이라고 말했다.

세종=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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