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민주화보상법)에 따라 보상금을 받았어도 정신적 손해에 대한 배상금은 따로 지급해야 한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민사합의33부(부장 신숙희)는 사망한 A씨의 배우자와 자녀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심과 같이 “총 4,381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A씨는 유신정권 시절인 1978년 12월 서울 종로구 기독교회관에서 유신체제를 비판하고 긴급조치 해제 및 기본권 보장을 요구하는 내용이 담긴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출감성명서를 받았다. A씨는 이듬해 2월 ‘출감성명서를 지인에게 교부하고 이를 소지했다’는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경찰은 구속영장도 없이 A씨를 여관에 일주일 간 구금했고, 피의자신문조서도 그곳에서 작성했다. A씨는 이 과정에서 외부와의 연락을 차단당한 채 경찰의 구타와 욕설에 시달린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긴급조치 제9호 위반 혐의로 1심에서 징역 및 자격정지 1년 6월을 선고받았고, 항소심 재판 중 긴급조치가 해제돼 289일 만에 구속집행 정지결정으로 석방됐다.
헌법재판소가 2013년 긴급조치 제9호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리자 가족들은 세상을 떠난 A씨 대신 5,618만원의 형사보상금을 받았다. 이어 “A씨가 당시 강압수사를 받아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하지만 정부는 “A씨가 2005년 민주화보상법에 동의했고 생활지원금 1,071만원도 받았기 때문에 재판상 화해가 성립됐다”며 배상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또 “구속되거나 재판을 받은 지 3년 또는 5년이 지나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했다.
1심 재판부는 “A씨가 받은 보상금에는 직접적ㆍ소극적 손해에 관한 부분만 있을 뿐 정신적 손해에 대한 배상은 포함되지 않았다”며 가족들의 손을 들어줬다. 정부의 소멸시효 주장에 대해서는 “긴급조치 제9호 위헌 결정 이후에야 형사보상금을 받은 사실 등을 종합하면 그 이전에는 손해배상채권을 행사할 수 없는 객관적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2심도 1심 판결이 옳다고 보고 정부의 항소를 기각했다.
윤주영 기자 ro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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