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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계림미술관 “옛 도심에 온기 불어넣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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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계림미술관 “옛 도심에 온기 불어넣어요”

입력
2020.02.26 16:59
수정
2020.02.26 18:21
0 0
[저작권 한국일보] 광주계림미술관 전경. 김종구 기자 /2020-02-26(한국일보)
[저작권 한국일보] 광주계림미술관 전경. 김종구 기자 /2020-02-26(한국일보)

26일 오후 광주 동구 옛 계림파출소. 건물을 끼고 뒤로 돌아가니 플라스틱과 양철 차양이 얹혀진 국적 불명의 한옥 한 채가 눈에 들어왔다. 입구에 유리문이 달린 이 한옥 양쪽엔 키 작은 빌딩(3~5층짜리)이 그 위용을 뽐내듯 들어서 있다. 차양 밑 벽에 내걸린 개관 축하 플래카드가 없다면 이곳이 ‘광주계림미술관’이라는 걸 알아채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걸음을 옮겨 미술관 안으로 발을 들였다. 여기저기를 둘러 보던 한 주민이 “그림 보러 왔다”고 반갑게 맞았다. 지은 지 73년 됐다는 이 목조주택의 천장과 나무기둥, 보, 흙벽 곳곳엔 세월이 흘러내린 자국이 선명했다.

지금이야 번듯하게 ‘미술관’이란 간판이 달렸지만,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텅 빈 집이었다. 주민들 표현을 빌리면 “귀신 나오게 생긴 집”에 지나지 않았다. 한때 부잣집 한옥 소리를 들었던 이 집은 술집과 만화방, 세탁소, 자개농방, 중국음식점 등으로 변신을 거듭하며 부침을 겪었다. 도심 팽창에 따른 원도심 쇠락을 피할 순 없었던 것이다.

[저작권 한국일보] 광주계림미술관 내부 전경1. 김종구 기자 /2020-02-26(한국일보)
[저작권 한국일보] 광주계림미술관 내부 전경1. 김종구 기자 /2020-02-26(한국일보)

이렇듯 흉물로 방치된 빈 집이 미술관으로 대변신을 꾀한 건 전남대 미술 동호회 ‘그리세’ 회원들 덕분이다. “광주 옛 도심의 추억이 사라지는 걸 언제까지 보고 있어야 하나” 안타까움에 발만 구르던 회원들이 결국 수를 냈다. 지난해 8월, 회원들은 “이대로 있을 수 없다”며 ‘그리세’라는 문화예술법인을 세웠다. 그리세는 1969년 결성돼 지금까지 1,000여명의 회원을 배출한 광주 지역 대표 문화예술동아리였지만 2000년대 초 어떻게 사라졌는지도 모르게 사라진 터였다. 이를 다시 부활시킨 것이다. 쉽지 않았지만 광주의 역사를 되살려보자는 말에 용기를 냈다. 회원들은 각자 주머니를 털어 돈을 모았고, 공가(公家) 1채를 임대해 미술관으로 꾸몄다. 회원들이 손수 사라진 기둥을 다시 세우고 페인트칠을 하며 온기를 불어 넣었다. 동네미술관으로 옷을 갈아 입힌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 미술관 곳곳엔 회원들이 뚝딱 만들어낸 책장 등 소품들이 즐비해 이를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손재주가 좋은 회원은 박달나무로 탁자를 만들었고, 목수는 직접 양철지붕을 씌웠다. 요즘엔 보기 힘든 자개농 문짝은 내부 출입문으로 변신했다. 갯벌에서 꼬막을 캘 때 사용하는 뻘배는 미술관 앞 의자로 역할이 바뀌었다. 1970~80년대부터 지나온 시간의 흔적들이 곳곳에 배어 있었다.

495㎡(150평) 남짓한 작은 미술관이지만 공간 효율성은 뛰어나다. 65㎡ 크기의 전시공간엔 누구나 연주할 수 있는 북이 놓여 있고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차담실과 관장실, 1인극이나 퍼포먼스, 버스킹이 가능한 골방무대도 설치됐다.

전시실 뒤쪽 자개농 문짝을 열고 나가면 정원과 안집이 나오는데 입주작가들이 살았던 곳으로 지금은 게스트하우스로 사용된다. 안집 창고로 사용되던 곳은 작가들의 작업실과 수장고 역할을 한다.

[저작권 한국일보] 광주 계림미술관 내부 전경2. 김종구 기자 /2020-02-26(한국일보)
[저작권 한국일보] 광주 계림미술관 내부 전경2. 김종구 기자 /2020-02-26(한국일보)

그리세 회원들이 꿈꾸는 미술관의 모습은 주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문화공동체다. 누구나 쉽게 들어와 편하게 그림도 그리고 노래도 하며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이를 통해 재개발 등으로 사라져가는 기억들을 보존하고 주민들에게 문화향유 기회를 주는 것이다. 또 미술을 비롯한 음악 연극 서예 국악 등 예술 동아리들이 사라지면서 희미해지는 ‘예향(藝鄕)’ 광주정신을 되살리는 것도 목표다. 프로와 아마추어 작가들의 만남의 장이 되는 것도 이 미술관의 몫이다.

그러나 이 동네 역시 재개발이 확정돼 3~4년 후면 미술관이 사라질 지도 모른다. 하여, 그리세 회원들은 그들만의 브랜드를 만들고 광주의 추억을 담을 수 있는 다양한 자료 확보 및 보관 작업을 계속할 예정이다. 구도심 재개발 사업의 현주소와 문제점을 알리고 개선방안을 모색하는 역할도 구상 중이다.

광주계림미술관은 개관 기념으로 ‘내 마음 속 계림동’전을 열고 있다. 계림동의 과거와 현재의 삶을 컬러와 흑백사진으로 표현한 작품들이다. 인근 주민들의 삶이 녹아있는 작품들이 대부분이어서 관객들의 마음을 짠하게 울리고 있다. 광주계림미술관 건립을 주도한 채승석 ‘그리세’ 총무이사는 “계림동의 역사와 문화를 보존하고 공유하는 공간이자 예향 광주정신을 살리는 역할을 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김종구 기자 sor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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