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20여년 외국에서 살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필리핀에서 살았고 지금은 대만에서 살고 있는데 모두 더운 기후의 나라들입니다. 외국이기는 해도 한국과 가까운 나라들이다 보니 1년에 한두 번은 한국에 갈 기회가 있지만 한국이 겨울일 때 들어갔던 적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자주는 아니어도 가끔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 갈 기회도 있었지만 그 나라가 겨울일 때 갔던 적이 없습니다. 처음에는 의도적으로 그런 것이 아니었는데 어쩌다 그렇게 십여 년쯤 겨울의 추위를 모르고 살다 보니 나중에는 일부러 일정을 조절해 겨울을 피했습니다. 저는 한국에 살 때도 춥다는 이유로 겨울을 싫어했던 사람이라 십여 년 동안 잊혀지다시피 한 추위를 다시 감당할 자신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얼마 전 한국을 다녀왔고 근 20년 만에 처음으로 영하의 겨울 날씨를 경험하고 왔습니다. 제가 예상했던 대로 한국 겨울은 많이 추웠지만 대만의 추위보다 견디기 수월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제가 한국 사람이어서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대만은 아열대성 기후의 나라이고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지는 않지만 북부 지역의 1~2월 기온은 10도를 오르내리는 날도 있고 산간 지역으로 가면 더 내려가는 추운 곳들도 있습니다. 영하도 아니고 영상 10도가 뭐가 춥겠냐고 하겠지만 평균적으로 사람은 14도부터 추위를 느낀다고 합니다. 특히나 섬나라인 대만의 습한 공기는 체감 온도를 더 떨어뜨려서 아열대성 기후에 익숙한 대만 사람들, 그리고 저 같은 사람이 느끼는 추위는 만만치 않습니다. 또한 대만은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지 않을뿐더러 나름 겨울이라고 해도 길어야 한두 달 정도라 건물을 지을 때 난방 설비를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람을 막아주는 실내로 들어오면 조금 덜 춥기는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공기보다 따뜻한 것은 오직 내 체온뿐이라 시간이 지나면 실외에서 느끼는 추위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결국 대만은 추위를 피할 곳이 없기에 그 추위를 온전히 스스로 감당해야 하지만 한국은 상대적으로 훨씬 더 춥긴 해도 추위를 피할 수 있는 따뜻한 곳들이 있기에 대만보다 추위를 견디기 수월했습니다. 제가 지내던 숙소에 난방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길을 가다 편의점에만 들어가도 바로 몸을 녹일 수 있었습니다.
요즘 모두들 갈수록 세상이 각박해진다고들 합니다. 가끔은 “눈보라 치는 벌판에 혼자 버려진 느낌”이 들 때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런 느낌이 드는 것은 정말로 세상이 각박하게 변한 것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돌아갈 수 있는 따뜻한 곳이 점점 줄어 들어서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따뜻하게 맞아줄 곳이 있다면 각박한 세상에서 느끼는 추위는 훨씬 견디기가 수월할 것입니다.
하여 우리 모두는 세상에서 지친 나를 따뜻하게 맞아 줄 곳이 필요합니다. 그 곳은 가족, 친구, 연인 등 기댈 수 있는 그 누군가 일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나도 누군가의 가족, 친구, 연인이고 지인입니다. 그리고 그들도 나처럼 돌아갈 따뜻한 곳이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의 아픔, 외로움, 슬픔을 모두 알아야만 위로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관심과 사랑으로 함께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더구나 누군가를 위로하면서 나 스스로 위로받은 경험을 해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내가 나눈 따뜻함은 나 자신도 따뜻하게 해 줍니다.
2월 말인 지금 겨울이 끝나 가는 듯합니다. 하지만 우리 인생의 겨울은 시작도 끝도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라도 돌아갈 수 있는 따뜻한 곳이 필요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따뜻한 곳이 되어 준다면 각박한 세상살이가 조금은 수월해 질 것 같습니다.
양상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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