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가 무섭게 증식하고 있다. 31번이라는 숫자가 100이 되고 1,000을 넘어가면서 생명체에게 찾아오는 가장 본질적인 두려움도 커져만 간다. 공포가 개인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다시 사회를 안개처럼 휘감을 때 한 공동체는 위기의 원인제공자를 찾아 나선다.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 31번까지 원인제공자는 ‘중국’이었다. 확진자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문제의 중심이 ‘대구’로, 다시 ‘신천지’로 옮겨감에 따라 우리 사회 일부에서 혐오가 여러 가지 형태로 분출되고 있다. 확진자가 하루 100명 단위로 뭉텅뭉텅 늘어남에 따라 특정 집단에 대한 정형화가 빠르게 진행되며 혐오로까지 이어진다.
‘정형화(stereotyping)’는 고정관념(stereotype)을 형성하는 심리작용으로, 영어에서 스테레오타입은 원래 인쇄업 용어였다. 출판물의 대량생산을 위해 만든 인쇄용 판을 칭하던 말인데, 미국의 언론인 월터 리프만이 1922년 ‘여론’이란 책에서 전용해서 쓴 이래, 고정관념이라는 사회심리 현상을 일컫는 의미로 굳어졌다.
정형화와 고정관념은 대부분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지만 그 근원을 살펴보면 인간의 생존에 꼭 필요한 심리 작용이기도 하다. 아주 단순하게 말하자면 정형화는 몇 가지 개별 사례와 증거를 기초로 일반화해서 한 집단과 그 구성원을 판단하는 인간의 심리를 말한다. 진화심리학자들은 인간이 아주 오래 전 사냥과 채집으로 식량을 조달하던 시절 이러한 심리기제를 갖게 됐을 것으로 추정한다. 수많은 야생 동식물을 빠른 시간 내 적절히 분류해야 생존과 번성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빠른 일반화’는 곧바로 인간 집단에도 적용돼 정치 경제적 활동에 유용하게 쓰였을 것이다. 매머드 사냥 중 다른 부족을 맞닥뜨렸을 때, 전쟁과 협력의 갈림길에서 효과적인 판단 수단으로 작용했을 터이다.
문제는 인간의 생활집단이 이제는 수천만 명, 수억 명이 됐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의 규모는 예전의 100여명에서 수만 배 커졌지만 심리기제는 예전 그대로여서 똑같은 정형화를 수만 년 전 방식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생물학적 진화와 문명 발달 속도의 차이에서 연유하는 부작용은 역사에서 수없이 반복됐다. 가장 극단적인 형태가 나치의 유대인 학살, 일본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 등이다. 잔인한 학살이 가능했던 이유는 바로 ‘빠른 일반화’로 인한 고정관념과 오해의 축적, 뒤이은 혐오의 대폭발이었다. 이 과정에 나치와 제국주의 일본 등 권력집단이 자행한 선전선동은 정형화와 혐오의 휘발유로 작용했다.
한 사회에 감염병의 위기가 닥치면 군중들은 희생양을 찾게 되고, 정형화를 거쳐 형성된 고정관념은 쉽게 혐오로 비화된다. 신천지가 그동안 보여 왔던 모습을 접했던 사람들은 몇 가지 사실과 경험에 기초해 자신도 모르게 고정관념을 갖게 된다. 이 상태에서 신천지발(發) 코로나바이러스 대확산이라는 위기를 당하면 고정관념에 기초한 혐오가 불꽃을 튀긴다. 위기 상황에서 혐오가 여과 없이 분출되면 혐오의 대상은 ‘박해받는 소수’의 심리 상태로 움츠러들어 한 구석으로 숨어 버린다. 바이러스가 어디서 어떻게 번지는지 알 수 없게 되는 최악의 경우다.
신천지 관련 기사에 달린 수많은 댓글 중 하나가 눈에 띄었다. “이런 분위기에선 나라도 신천지라고 말 못하겠다.” 바이러스 확산을 막는데 가장 효과적인 것은 사회 구성원 모두의 자발적인 협조이고 피해야 할 것은 혐오의 표출이다. 그리고 혐오의 형성과 표출을 가능케 하는 것 중에 정형화가 있다. 중국, 대구, 신천지에 이어 바이러스와 연결되는 또 다른 무엇이 오더라도 이 혐오의 기제가 우리 심리 밑바닥에 깔려 있다는 사실을 되새기면서 한번 더 생각해 보자. 목적은 바이러스 확산 방지라는 것을.
이재국 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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