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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ep&Wide] 코로나 이후 목격된 민심이반…그래도 ‘시황제’엔 도전불가

입력
2020.02.26 18: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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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ep&Wide는 국내외 주요 흐름과 이슈들을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깊이 있는(deep) 지식과 폭넓은(wide) 시각으로 분석하는 심층 리포트입니다. 

지난 10일 베이징의 신종 코로나 전문 치료병원인 디탄 병원을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화상 연결을 통해 바이러스 발원지 우한 지역의 중증환자 전문병원 의료진을 격려하고 있다. 시 주석의 신종 코로나 관련 현장 방문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베이징=신화 연합뉴스
지난 10일 베이징의 신종 코로나 전문 치료병원인 디탄 병원을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화상 연결을 통해 바이러스 발원지 우한 지역의 중증환자 전문병원 의료진을 격려하고 있다. 시 주석의 신종 코로나 관련 현장 방문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베이징=신화 연합뉴스

중국 당국은 우한(武漢)에서 시작된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초기 대응에서 사안의 중대성을 간파하지 못하고 안이하게 대응해 화를 키웠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중앙은 비판의 화살을 피하기 위해 지방에 책임을 전가하고 심지어 시진핑 주석은 리커창 총리 뒤로 숨은 게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 전염병 상황에 대한 잦은 통계 기준 변경은 투명성과 신뢰성에 영향을 주고 은폐 의혹까지 낳고 있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중국 당국의 책임론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중국 정치제제의 변화 가능성과 강력한 리더십을 행사하고 있는 시진핑 주석의 지도력이 흔들릴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과연 ‘시진핑체제’는 무탈할 수 있을까.

 리원량 파장 

논란의 중심에는 이른바 우한의 ‘휘슬 블로어(whistle-blowerㆍ내부고발자)’로 불리는 젊은 의사 리원량(李文亮)의 갑작스런 사망이 자리하고 있다. 34세의 젊은 의사였던 리원량의 죽음은 확실히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중국 내에서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6억 명 이상 방문했다. 많은 이들이 ‘인터넷 분향소’ 등 각자의 방식으로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이러한 자연발생적인 애도와 추모의 물결은 우한 지역 대학교수 10명의 기명 호소문으로 이어졌다. 중국 사회에서 이름을 드러내놓고 집단적으로 당국에 호소문을 내기란 여간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한 지역 교수들은 용기를 내서 헌정과 언론 자유를 얘기하고, 리원량에게 의사(義士) 칭호를 부여하며, 당국이 진심으로 사과할 것을 호소했다. 이처럼 그의 사망은 분명 민심을 움직였고, 민심은 민의로 모아져 교수들이 당국에 헌정, 언론자유, 사과 등을 직접 호소할 정도로 용기를 내는데 큰 힘이 되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한 다면 민심의 반영이라 할지라도 정치체제의 변화나 시진핑 주석의 리더십을 흔들 정도로 파괴력이 있다고 볼 수는 없다. 2003년 사스(SARSㆍ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발생 때도 유사한 경우가 발생했었다.

 사스의 추억 

2002년 말~ 2003년 초 장쩌민에서 후진타오로 권력이 교체되는 시기에 중국에선 사스라는 초유의 전염병이 발생했다. 당시에도 통계 조작이나 은폐 등 당국에 대한 불신이 만연했다. 당연히 언론자유의 문제도 등장했다. 흉흉한 민심은 체제의 위기로 증폭되어 ‘제2의 천안문’ 사건이나 정치개혁의 요구 등으로 나타날 것이라는 전망이 국내외적으로 확산됐다.

전염병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희생양’을 찾을 것이란 관측도 빠지지 않았다. 당시 멍쉐농(孟學農) 베이징 시장과 장원캉(張文康) 위생부장의 경질도 권력투쟁에 따른 ‘희생양 찾기’로 해석됐다. 그러나 사스가 창궐하던 시기 그리고 그 이후에도 중국에서 ‘제2의 천안문’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중국의 정치체제는 사스라는 위기를 체제 적응력을 높이는 기회로 활용하면서 경험을 축적하고 학습해 나갔다.

이번 신종 코로나의 확산과 이에 대처하는 중국 당국의 움직임은 매우 서툴렀다. 중국 당국의 초기 대응을 보면 17년 전의 사스 창궐 시기의 교훈은 전혀 학습되지도 않았고 심지어 경험조차 잊어버린 것처럼 행동했다. 여기에 민심이 분노했고, 젊은 의사의 죽음을 포함한 몇몇 사건은 분노하는 민심에 기름을 부었다. 2003년 사스 때 나왔던 ‘희생양’, ‘책임 전가’, ‘정치개혁’, ‘리더십 위기’, ‘제2의 천안문 사건 가능성’ 등 동일 맥락의 표현들이 17년이 흘러 다시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당조직 vs 민심 

그러나 이런 민심의 흐름이 체제변화나 리더십 위기로 번질 것이라는 생각은 섣부른 판단이다. 기본적으로 ‘당국가체제’라는 중국의 조직역량을 과소평가해선 안되기 대문이다. 중국에서 당은 개혁의 대상인 동시에 주체이다. 역사적 사실과 현재 벌어지는 현상에 대한 해석과 설명의 권능도 당이 갖고 있다. 특히 시진핑 주석 집권 이후 당의 영도는 모든 것에 우선하고 또 그래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심화됐다. 이번 전염병과 사투 과정에서 당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9,000만 당원은 전염병 예방과 통제 과정에서 당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했다. 비록 몇몇 당원들의 일탈이 발견됐지만 당국가체제를 착근시키고 작동하는데 중심 역할을 하는 당조직과 당원들은 거의 흔들리지 않고 기능하고 있다.

이처럼 당은 전염병 예방과 통제 과정에서 광범위하게 기능한 반면, 민심에 기초해 민의를 대변할 사회 움직임은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10명의 우한 대학 교수들조차 헌정, 언론자유 등을 청원하거나 호소하는 수준에서 머물렀을 뿐이다. 헌정 회복은 20세기 초부터 중국 지식인들의 오랜 관심사였는데, 이번에도 지식인들은 이러한 역사적 맥락 안에서 당국에 호소하는 것으로 자신들의 역할을 제한했다.

전염병 창궐 과정에서 중국 인민들의 반대 정서가 부분적으로 드러났을지언정 ‘반시진핑체제’의 방향으로 발전할 만큼 성숙된 건 아니었다. 사회운동을 이끌 조직력도 부족하고 조직을 끌고 갈 리더도 찾아볼 수 없으며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한 방향성도 충분히 고민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파편화된 인민들의 호소는 그 호소를 수용하면서 통합력을 높이고 조직력을 강화하려는 당국에게 이용될 뿐이었다. 게다가 인민들은 기본적으로 지방 권력에 대해선 비판적이지만 중앙 권력에 대해선 적극 지지하는 이중적 시선을 갖고 있다. 따라서 신종 코로나 창궐과 확산 과정에서 비록 민심이 동요하긴 했어도 정치체제의 변화, 시진핑 주석의 리더십 위기로까지 파장이 확대될 것 같지는 않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 환자의 존재를 세상에 처음 알린 중국 우한시중심병원의 의사 리원량씨의 생전 투병 모습. 환자 진료에 전념하던 그도 신종 코로나에 감염돼 투병하다 지난 6일 사망했다. 리원량 웨이보 캡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 환자의 존재를 세상에 처음 알린 중국 우한시중심병원의 의사 리원량씨의 생전 투병 모습. 환자 진료에 전념하던 그도 신종 코로나에 감염돼 투병하다 지난 6일 사망했다. 리원량 웨이보 캡처

 작은 불씨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원량의 죽음은 ‘광야를 불사르는 하나의 불꽃(燎原之火)’이 되어 언젠가는 ‘하나의 불씨가 광야를 불 사를(星火燎原)’ 민심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번 전염병 창궐과정에서 중국 당국은 강고한 당조직과 당원들을 동원해 위계적으로 예방과 통제에 나섰지만, 다른 한편으로 민심의 이반을 분명 목격했고 이는 긴장 요인이자 정치적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중국의 현 정치체제는 직접선거를 도입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권력 창출과 관련된 절차적 정당성이 현저히 취약하다. 따라서 중국 정치에서는 사회적 명분을 축적하고 이를 통해 당 우위의 정치를 해 나가는 것이 통치 정당성 확보 차원에서 매우 중요하다. 사회적 명분은 당국에 대한 당원과 인민의 신뢰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러나 이번 전염병 대응 과정을 보면 당원은 여전히 동원의 대상이고, 인민들은 선전과 통제의 대상이었다. 자발성에 기초하고 신뢰에 기반을 둔 사회적 명분축적은 덜 중시되었다. 물론 전염병 확산이라는 긴박한 상황에서 신뢰와 자발성보다는 위계적 명령에 입각한 거버넌스가 효율적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중국 당국의 미숙한 초기 대응이 야기한 인민들의 부분적 민심이반은 정치체제와 리더십을 장기적으로 부식시킬 수도 있다.

신종 코로나의 창궐과 확산은 당국가체제와 리더십에 변화를 초래할 뿐만 아니라 민심 변화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다만 사회변화를 이끌 조직과 리더가 없는 상황에서 기층에서 분출하는 민심의 요구는 여전히 ‘요구’ 수준에 머물 것이고, 당국은 이를 선택적으로 ‘수용’하면서 민의를 체제 내화(內化)할 것이다. 이 경우 당국의 체제 적응력은 오히려 높아지고 전염병 상황은 오히려 사회변화에 대한 새로운 거버넌스를 학습하는 계기로 활용될 것이다. 인민들 역시 일정 정도 요구가 수용되는 것을 경험하게 되고, 이를 통해 당국에 대한 ‘요구’의 수준을 높여갈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된다는 점에선 긍정적인 면도 있다. 하지만 인민들이 의식적으로 사회 공동체를 위해 이른바 ‘자발적 격리’와 같은 공동체 이익을 체화하고 이를 사회운동으로 투사하기에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민심이반은 분명 당장의 위협은 아니다. 하지만 당국가체제의 장기지속엔 분명 새로운 도전요인이 될 것이다. 리원량이 말한 “건강한 사회란 오직 하나의 목소리만 있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는 이제 리원량 개인만의 바람이 아니라, 거스를 수 없는 하나의 민심이 되었기 때문이다.

양갑용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


양갑용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대외전략실 연구위원은 중국 푸단대학 국제관계학원에서 정치학 박사를 받았으며 성균관대 성균중국연구소 연구실장을 지냈다. 중국 공산당체제, 권력 엘리트구조 등 중국 국내정치분야 전문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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