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동의 필요 없는 대통령 권한… 이해찬 “추경 지체되면 발동해야”

“전시 상황 같은 급박한 상황서 제한적으로 사용돼야” 신중론도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25일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에서 열린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고위당정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대통령이 ‘긴급재정명령권(이하 긴급명령권)’을 발동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정부와 여당을 중심으로 꾸준히 나오고 있다.

긴급명령권은 헌법에 명시된 대통령의 권한으로 내우외환, 천재지변 또는 중대한 재정ㆍ경제상 위기에서 긴급한 조치가 필요하고, 국회의 소집을 기다릴 여유가 없을 때 대통령이 발동할 수 있다.

하지만 현 시국이 사실상 전시 상황을 뜻하는 ‘내우외환’급 위기인지, 또 국회가 제대로 가동될 수 없는지에 이견도 존재해 권한 발동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계속 거론되는 긴급명령권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5일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에서 열린 당정청 회의에서 “국회 상황으로 봐서는 추가경정예산(추경)이 언제 통과가 될지 확실치 않다”며 “추경 통과가 지체되면 긴급재정명령권이라도 발동해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ㆍ여당 내에서 긴급명령권 발동 얘기가 나온 것은 이날이 처음이 아니다. 노형욱 국무조정 실장은 지난 20일 국회 정무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민병두 정무위원장의 ‘긴급명령권 발동’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위원장이 제안하는 안까지도 책상 위에 올려놓고 검토하고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런 발언이 ‘정부의 긴급명령권 발동 검토‘로 해석되자, 노 실장은 “긴급명령권 발동을 전혀 언급한 바 없다”고 해명했다. 이후 정세균 국무총리도 “실무차원에서 검토한 것”이라며 진화에 나서 권한 발동 논란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하지만 여당 최고 책임자인 이해찬 대표가 이날 당정청 회의에서 ‘권한 발동’ 필요성을 다시 언급하면서, 정부가 상황 전개에 따라 긴급명령권을 실제 발동할 수 있다는 관측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이 대표가 ‘추경안 국회 통과 여부’를 권한 발동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하면서, 정부와 여당이 권한 발동 시기에 대해 어느 정도 의견을 교환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신속한 재정집행 가능하지만 추후 국회 동의는 부담

정부는 추경안을 최대한 빨리 편성해 2월 임시국회 마지막 날인 3월 17일까지 국회 승인을 받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총선을 코앞에 둔 특수한 상황이라 야권이 정부가 짠 추경안을 쉽게 동의해 줄지 낙관하기 어렵다. 추경으로 코로나19 사태의 급한 불을 끄려는 정부와 여당이 국회 동의가 당장 필요 없는 대통령 긴급명령권 발동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이유다.

긴급명령권이 발동되면 정부는 국회의 추경안 통과 여부와 관계없이 신속하게 재정을 집행해 위기에 대응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사전적 조치로 추후 국회의 동의를 다시 받아야 한다. 국회의 동의를 얻지 못한 긴급명령권은 그 효력이 취소돼, 정부는 이전 조치를 다시 원상태로 돌려놔야 한다. 야당이 추경안의 통과를 미룬다고 해서 정부가 일방적으로 긴급명령권을 발동하기는 어려운 구조다.

긴급명령권이 마지막으로 발동된 적은 금융실명제가 전격 시행됐던 1993년 8월이다. 금융실명제 시행에 국회 동의 절차를 밟을 경우, 정책의 전격적인 효과가 대거 반감될 수 있다는 ‘긴급성’이 인정돼 당시 국회는 김영삼 대통령의 긴급명령권을 사후 승인해줬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긴급명령권은 전시처럼 국회가 제대로 소집되기 어려운 상황이나, 여야가 긴급조치의 필요성을 충분히 인정할 경우에 발동되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는 “야당도 추경 편성 필요성에 동의하는 상황에서 긴급명령권 발동을 미리 언급하는 것은 부적절해 보인다”며 “최후의 상황에서 긴급명령권을 쓰더라도 사후 국회의 동의를 받을 수 있는 선에서 제한적으로 권한을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민재용 기자 insigh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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