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관, 소방관, 군인 중 5명에 정장 선물 이벤트 예고 
 2018년 한 시각장애인의 꿈 이뤄주기 위해 여의도 10㎞ 질주 1년 9개월만 
정재종씨는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정장을 입고 달린다"고 말했다. 정씨 제공

구두끈을 다시 고쳐 매기로 했다. 넥타이에 슈트는 기본. 여기까지는 흔한 회사원 복장과 별로 다를 게 없다. 그러나 이 옷차림에 서류가방까지 들고 아스팔트도로 42.195㎞를 달린다면 어떨까. 아무리 가죽구두라고 해도 마라톤 풀코스를 뛰고 나면 찢어지고 헤어지기 마련이다. 어디 구두뿐이랴. 딱딱한 구두 밑창과 굽이 유발한 발의 피로감은 상상 그 이상이다. 그런데도 정재종(31)씨는 또다시 정장을 입고 달리기로 했다. ‘정장 입고 뛰는 청년 마라토너’라는 별칭이 붙은 정씨는 다음달 9일(한국시간) 열리는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마라톤대회 일반부에 참가해 “42.195㎞를 완주하겠다”고 다짐했다. 2018년 6월 한 시각장애인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정장을 입고 서울 여의도 한강변 10㎞를 달린 이후 1년 9개월 만이다. 그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번에도 마라톤을 통해 꿈과 희망을 전달하기 위해서 뛰기로 했다”고 말했다. 정씨가 러닝복대신 정장을 입고, 마라톤용 운동화가 아닌 구두를 신고 마라톤대회에 참가하는 이유다. 실제 정씨에게 정장마라톤은 ‘취미로 뛰는’ 마라톤이 아니다. 그에겐 기부활동이나 마찬가지다.

“자신만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죠. 제가 정장을 입고 마라톤을 완주하면, 이들에게 정장과 구두를 선물해 줄 수 있겠느냐고 정장회사와 구두회사에 제안했는데 해당 기업들이 흔쾌히 호응해 주더라구요.” 그때가 전남대 재학중이던 2016년 3월이었다. 당시 정씨는 세종 울트라마라톤대회에서 100㎞를 정장과 구두를 착용한 채 완주한 뒤 자신과 같은 처지의 취업준비생들에게 정장 3벌과 구두 3켤레를 선물했다. 이어 같은 해 영국 솔즈베리 울트라마라톤에서도 50㎞를 정장과 구두를 신고 완주하고 정장 3벌을 기부했다. 정씨는 “당시 주변에 취업을 준비하는 친구들이 많았는데 자기가 가고 있는 길에 확신을 못 가진 것 같아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싶었다”고 회고했다. 이를 계기로 정씨는 기회가 될 때마다 정장을 입고 마라톤대회에 나섰지만 달릴 때 입는 정장만큼은 후원받지 않았다. 기부하겠다면서 기부받으면 되겠느냐는 생각에서다.

미국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정씨는 이번 LA마라톤대회도 국내 한 정통 신사복 브랜드 사업회사의 후원을 받아 참가할 예정이다. 정씨는 마라톤대회 후 우리 사회에 묵묵히 헌신하고 있는 경찰관이나 소방관, 군인 중에서 5명을 뽑아 정장을 선물하기로 했다. 정씨는 이를 위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사연을 받고 있다. 정씨는 “지금까지 청년이란 이유로 알게 모르게 많은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많이 받았다”며 “내가 받은 도움을 다른 분들에게도 나눠주면 우리 사회에 좋은 에너지가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정씨가 이번 정장마라톤 프로젝트명을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로 결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정씨는 군사안보 분야 전문가가 되겠다는 꿈도 키우고 있다.

“2011~2013년 군 복무 시절 천식을 고치려고 한 부사관에게 배운 게 마라톤이었는데, 어찌 보면 그때부터 사회 공헌이 시작된 것 같아요. 지금은 매일 아침 7~8㎞씩을 달리면서 국가에 공헌할 길도 찾고 있죠. 마라톤을 통해 선한 영향력이 이어지고 있다고 봐야죠. 운명처럼 말이에요.”

광주=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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