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캐나다가 1950년 오늘 나이아가라 폭포의 보존과 개발을 위한 협정에 서명했다. 위키피디아.

나이아가라 폭포는 한 해 약 3,000만명의 관광객이 찾는 세계적 관광지이지만, 미국 독립전쟁 시대에는 미국과 캐나다(엄밀히 말하면 영국)의 격렬한 전쟁터이자 삼엄한 국경이었다. 나폴레옹이 일으킨 유럽 전쟁이 영국의 발을 묶고 있던 1812년, 미국은 나이아가라 폭포와 오대호를 건너 토론토와 몬트리올까지 점령했다. 영국 지원병과 원주민 부대가 가세한 반격으로 미국은 다시 패퇴, 수도 워싱턴DC까지 내주는 수모를 당했다. 나이아가라 폭포를 따라 구축된 그 전쟁의 요새들이 지금도 관광객의 눈길을 끌고 있고, 미국과 캐나다 국경은 지금도 이리(Erie) 호수에서 온타리오(Ontario)호수로, 대서양으로 흘러드는 나이아가라 강과 폭포를 양분하며 그어져 있다.

물론 나이아가라 폭포도, 떨어지는 물의 소유권도 두 나라가 나누어 갖고 있다. 양국이 나이아가라 폭포 보존 및 평화적 이용을 위한 협력에 합의한 건 전쟁을 벌이고 100년도 더 지난 1929년 1월 2일이었다. 약 1만년 전 빙하가 녹고 땅이 침식ㆍ융기하면서 오대호와 함께 생긴 나이아가라 폭포는 상부가 물에 약한 석회암이고 하부도 상대적으로 무른 이판암과 사암으로 구성됐다. 방대한 수량이 세계 최강의 폭포 운동에너지로 휩쓸어 가면서 폭포 자체가 빠르게 침식돼 가던 때였다. 관광을 위해서는 물이 흘려야 했지만, 보존을 위해서는 수량을 조절해야 했다. 오대호 주변 공업단지의 전력 수요도 커져 갔다. 수량도 많고 낙차도 큰 나이아가라 강은 천혜의 수력발전 자원이기도 했다. 양국 조사위원회가 꾸려졌고, 보존ㆍ개발 사업이 논의됐다.

1950년 2월 27일 두 나라는 ‘나이아가라 전환 협정(Niagara Diversion Treaty)’에 서명했다. 폭포 보존과 관광ㆍ발전(發電)의 3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초당 수량을 계절별, 시간대별로 일정 규모로 방류하며, 아무리 적어도 초당 142만 L(1,416㎥) 이상은 흐르게 하자는 게 골자였다. 1961년 강 상류에 댐이 완공되면서 219만KW 용량의 발전기 13기가 가동을 시작했고, 수량 조절로 폭포의 침식 속도도 대폭 늦추게 됐다. 최윤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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