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중기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저서 ‘노동체제…’서 노동정책 분석 
 
[저작권 한국일보]노중기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가 17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계급 내부 경쟁에서 탈락한 열패자들을 죽음 같은 삶의 조건으로 몰아넣는 현재 신자유주의 형태의 자본주의가 영화 '기생충'의 모티프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경성 기자

“문재인 정부 노동 정책이요? 점수를 주면 빵점(0점)은 아니지만 낙제점입니다.”

최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정기 대의원 대회가 열린 서울 등촌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노중기(59)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가 내놓은 평가였다. 노 교수는 전국교수노조 대의원 자격으로 이날 회의에 참석한 터였다.

먼저 보수인 이명박ㆍ박근혜 정부와 다를 바 없다는 식의 비판과는 선을 그었다. 객관적 개혁 성과가 없지는 않다고 봤다. 제도적 정책적 전진은 있었다. 흔들리는 조짐이 보이지만 최저임금이 대폭 인상됐고 주52시간 근로제가 노동 시간 단축 효과를 거뒀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로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적 의제가 됐고, 비정규직들에게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희망과 자신감을 불어넣어 준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노 교수가 꼽은 가장 큰 진전은 합법적 파업권인 쟁의권을 인정했다는 점이다. “군사독재 정권 때는 물론, 이후 민주정부 시절에도 대형 쟁의에 대해서는 국가가 미리 ‘불법 파업’으로 낙인 찍어 원천 봉쇄했죠. 지난해 톨케이트 노동자 파업은 큰 쟁의였음에도 공권력으로 때려잡지 않았어요. 그런 정부는 문 정부가 처음입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노 교수는 문 정부 또한 장기적 관점이 없는, 득표에만 관심 있는 ‘포퓰리즘 정권’이긴 매한가지라고 진단했다. 그는 “촛불이라는 시대적 압력이 있었던 만큼 노동을 존중하겠다는 더불어민주당의 개혁 정책에 기대를 걸었지만 정부가 보인 건 청와대 핵심 그룹 주도로 오로지 선거공학적 계산에 따라 여론만 추수하는 모습이었다”며 “집권 이듬해인 2018년 하반기 이미 노동 쪽은 기대를 접었다”고 전했다.

‘임기 내 최저임금 1만원 실현’ 공약을 철회하게 된 경위가 대표적이다.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의 ‘최저임금 1만원’ 제안이 인기를 끌자 소득 정책 핵심으로 그걸 받아들여서 청년층 점수를 많이 받아간 게 문재인 정부였어요. 안철수, 홍준표 후보도 취지에는 동의했으니 선거 전에 국민적 합의가 있었던 겁니다. 물론 복잡한 사정이 있었겠지만, 그 공약을 뒤집은 건 선거 논리와 정무적 판단이었습니다.”

노 교수는 민주 노조 운동 활동가이면서 동시에 노동학자다. “노조 활동은 연구자 입장에서 자료에만 의존하지 않고 참여 관찰을 통해 민주 노조 운동을 평가하려는 의지”라고 말했다. 최근 펴낸 ‘노동체제 변동과 한국 국가의 노동정책(2003~18)’은 참여정부 이후 역대 정부의 노동 정책을 분석해낸 연구서다.

핵심 개념은 ‘노동체제’다. 그는 한국의 노동체제를 △ 노동 운동이 턱없이 미약했던 ‘1987년 이전’ △민주화 이후 노동계가 공세적 투쟁을 벌이던 ‘87년 노동체제’(1987~97년) △외환위기 뒤 노동 민주화와 노동 시장 유연화가 함께 진행된 ‘신자유주의 노동체제’(1998~2007년) △노동 시장이 쪼개지고 비정규직 생존이 위협당한 ‘종속 신자유주의 노동체제’(2008년 이후)라는 네 단계로 나눴다.

신자유주의 노동체제 앞에다 ‘종속’을 덧붙인 것은 우리 현실이 서구의 신자유주의 자본주의보다도 못하다는 뜻이다. “한국 사회는 서구와 달리 사회민주주의라는 노동 포섭 체제, 즉 복지국가를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그 상태에서 신자유주의가 반공주의 이데올로기나 억압적 국가 장치와 결합되는 바람에 노동 시장 열패자들이 서구보다 훨씬 더 깊은 나락에 빠지고 국가의 노동자 억압도 훨씬 더 가혹한 사회가 돼버린 거죠.”

영화 '기생충' 속 부부 문광(왼쪽)과 근세. 이 시대의 낙오자들을 상징한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노 교수는 그래서 빈곤 계급 내부 갈등과 양극화를 드러낸 영화 ‘기생충’이 ‘종속 신자유주의 노동체제의 거울’이라고 했다. “한국 사회에선 잘리고 나면 비슷한 새 직장을 잡기가 어려워요. 계급 내부 경쟁에서 탈락하면 ‘기생충’에서 쫓겨나는 가정부 문광처럼 미래가 없습니다. 정리 해고된 쌍용차 노동자 가족이 겪은 비극이 실제 사례죠.” 노 교수는 문재인 정부가 “현 체제 종식의 단초를 마련하면 좋겠다”면서도 “지금은 비관적”이라고 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문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