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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촛불 집회 당시 자주 불린 세월호 추모곡 가사 가운데는 이런 문장이 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민주주의와 시민의 힘 안에서 ‘진실과 거짓 중 진실을 승리케 하겠다’는 시민들의 의지가 묻어나는 표현이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눈을 질끈 감게 한 단어가 하나 있었다. ‘해적기지’다. 2012년 제주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던 운동가 A가 트위터에 썼다. “제주 ‘해적기지’ 반대합니다. 강정마을, 구럼비 바위를 지켜냅시다.” 군은 격분했다. 군 출입기자였던 내게도 많은 얼굴이 스쳤다. 천안함 피격으로 찬 바다에 잠긴 전사자들, 고된 훈련 속에 손이 얼어붙기 일쑤인 장병들, 비바람을 악착같이 견딘 거친 손에 아이가 다칠까 꽉 안아주지 못했는데 전사한 남편을 그리워하던 아이 엄마 등.

A에게 비난이 쏟아졌다. 부당한 표현이라는 걸 서로가 새삼 확인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사태가 묘하게 덧난 건 일이 법정으로 가면서였다. 해군은 A를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너무하다’는 화살이 돌연 군에게도 갔다. 세상엔 ‘A가 아무리 밉더라도 이 말을 법으로 벌 주겠다는 건 용납하기 어려운’ 민주주의 지식인이 많았다.

아픈 단어는 계속 온 공론장을 부유했다. 약 10달 뒤 검찰은 A를 무혐의 처분했다. 주관적 평가에 불과한 말을 ‘허위에 의한 명예훼손’이라 보기도 어렵고, 수십 만 예비역을 모욕했다는 것도 법리에 맞지 않다는 이유였다. 지당하고 괜한 사실만 확인한 맥 빠지는 과정이었다.

이 일을 다시 생각한 건, 최근 더불어민주당의 ‘칼럼 고발’ 사건을 보면서다. 감히 평가할 자격은 없지만 ‘민주당만 빼고’를 주제로 한 논쟁적 칼럼은 확실히 다양한 반응을 불렀다. 시원하다는 평도 있었고, 칼럼이니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 소지는 없지만 선거에 관한 것인 만큼 달리 표현하는 게 나았다는 반응도 흘렀다.

민주당에도 나름의 다급한 사정은 있다. 민주당은 올해 총선을 최소 15석은 손해보고 시작하는 경기로 여긴다. ‘상대는 하는 비례위성정당 창당을 포기했으니 아예 출발선이 다른 경기를 치른다’는 것이다. ‘지역구도 만만한 곳이 없고, 그러다 1당을 놓쳐 의장 리더십이 교체되면, 산적한 국정과제를 해결하기 요원한데 선거 직전에 이 무슨 위험한 슬로건이냐’는 항변이다.

이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문제는 당이 칼럼 건을 검찰에 들고 가면서 시작됐다. 이의신청을 하거나, 반론칼럼을 요구하거나, 대변인 논평으로 반박하는 대신이었다. 칼럼에 동의는 못해도 민주당이 검찰의 칼로 이걸 벌하겠다는 그림만큼은 견딜 수 없는 자유론 신봉자들의 숫자만큼, 민주당을 향한 실망감도 쏟아졌다. 설상가상으로 당은 필자의 배경을 저격했고, 공교롭게 소장파 금태섭 의원을 향한 당 일각의 공세도 이 무렵 비화됐다. ‘이견을 못 견디는 독선’에 대한 의구심이 이어졌다.

민주화 세력이 포진된 민주당이 내·외부로부터 정치학·언론학 개론을 새로 듣는 신세가 됐다. 개인과 공동체는 자유로울 때 최대로 성장한다는 점. 절대 옳거나 절대 틀린 집단은 없기에 다르고 거친 의견도 허용하는 게 더 이득이라는 점. 어두운 극장에서 거짓말로 “불이야!”를 외치는 극단 행위가 아닌 이상 의견은 벌하지 않는 게 낫다는 점. 그게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도덕률이라는 점. 왜 이 모든 원리를 잊은 것처럼 구냐는 우려가 거듭됐다. 또 상처뿐인 고소였다.

자주 잊어버리지만 우리는 ‘촛불시민’과 산다. 아무도 누가 ‘해적기지’라 한다고 해군을 해적으로 보지 않고, 누가 ‘민주당만 빼고’ 찍으란다고 그러지 않는다. 교과서적 표현대로 ‘진리와 거짓이 서로 다투게 해도’ 진리가 패할 확률은 현저히 줄어든 지 오래다. 그런 냉정한 시민들은 지금 ‘어느 쪽에 힘을 싣는 게 옳은지’를 조용히 고심 중이다.

곳곳에서 소모적이고 위태롭게 이어지는 ‘이견 찍어내기’는 명분과 실리, 그 무엇도 구원하지 못한다. 우리는 어떤 나라에 살고 싶은가. 다시 본질을 가만히 곱씹었으면 한다. 어차피 각자의 마음 속엔 숱한 변주가 자리잡을 것이다. 독선당만 빼든. 억지당만 빼든. 무(無)책임당만 빼든. 구태당만 빼든. 꼼수당만 빼든. 편법당만 빼든. 각자의 답을 찾을 시간은 약 50일뿐이니.

김혜영 정치부 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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