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 영향 행사 취소에 학생들 “사진이라도 찍게 해달라”
학교측, 학사모·가운 무상 대여… 한산한 캠퍼스 삼삼오오 ‘찰칵’
“응, 엄마. 걱정하지마. 사진 찍어서 보내드릴게요.”
20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교정에서 만난 화학부 졸업생 박병욱(26)씨는 친구와 함께 기념 사진 촬영에 한창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생애 한 번뿐인 졸업식이 취소돼 실망했지만, 학교에서 학사모와 졸업가운은 원래대로 대여해준다는 소식에 한걸음에 달려왔다. 박씨는 “고향이 강원도 태백이라 입학식 때 못 오신 부모님이 졸업식만은 꼭 오고 싶다고 하셨는데 그러지 못한 게 마음에 걸린다”면서도 “이렇게라도 학창 시절의 마지막을 마무리할 수 있어서 나쁘지는 않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 사태로 전국 대다수 대학이 졸업식을 취소하면서 떠들썩한 졸업시즌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화려한 행사와 유명 인사의 축사 대신 가족, 친구와 삼삼오오 모여 졸업을 축하하는 ‘작은 졸업식’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 5일 교육부의 집단행사 자제 권고에 따라 서울대와 연세대, 고려대 등 서울 시내 대부분 대학은 이달 중순 예정됐던 졸업식을 취소하거나 간소화했다. 대학들은 졸업생들에게 오는 8월 열리는 다음 학위수여식에 참여할 수 있다고 안내했지만 학교를 떠나는 졸업생 일정상 어려운 일이다.
“기념 사진이라도 찍게 해달라”는 학생들의 요구가 빗발치자 대학들은 고심 끝에 학사모와 학사복 무상 대여를 정상적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서울대의 경우 지난 17일부터 오는 28일까지 관악캠퍼스 정문과 중앙 잔디 등에 졸업생을 위한 포토존도 설치했다. 단출하지만 졸업생들에겐 추억을 남길 장소다.
대학들은 한꺼번에 많은 졸업생이 몰리는 경우에 대비해 감염 방지 대책도 마련했다. 건국대의 경우 오는 24~28일간 학사복 대여 가능 날짜를 학과별로 배분했다. 정지우 건국대 부총학생회장은 “한 번 사용한 졸업 가운은 비닐로 밀폐해 소독 후 사용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졸업생들은 작은 졸업식이라도 만족스럽다는 분위기다. 이날 부모님, 여동생과 함께 서울대에서 졸업 사진을 찍은 기계공학부 박사과정 수료생 송정우(29)씨는 “가족들의 축하를 받으니 일반적인 졸업식과 별로 다를 게 없다”며 “점심은 다 같이 장어를 먹기로 했다”고 미소 지으며 말했다.
서울 광진구 세종대에서 만난 호텔관광외식경영학부 졸업생 김모(23)씨는 “행사는 사실상 요식 행위고 동기, 선후배들과 추억을 남기는 게 중요한 것 아니겠느냐”며 “사람이 많지 않아 사진 찍기 더 편한 점도 있다”고 전했다.
아들의 졸업식을 축하하러 왔다는 김병모(53)씨도 “주차장에 자리가 넉넉하고 캠퍼스가 한산해서 아들이랑 같이 천천히 한 바퀴 돌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졸업식 특수’를 노린 상인들은 울상이다. 대학들이 최대 2주간 졸업가운을 대여하면서 판매량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세종대 정문에서 꽃다발을 판매하던 강모(22)씨는 “일주일 내내 나오고 있는데 판매량은 지난해에 미치지 못해 답답한 상황”이라고 했다.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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