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민주당만 빼고’라는 칼럼이 논란이 있었다. 그 글에 나도 한마디 하고 싶지만 정치적 금치산자인 나는 그조차도 할 수 없다. 단지 그렇게 글을 쓸 수 있는 저자의 교수라는 지위가 부러울 뿐이다. 그래서 교사인 나는 이 귀한 지면에 정치 얘기는 입도 뻥긋도 못 하고 에둘러 여행담이나 늘어놓는다.
누구나 여행을 꿈꾸지만 막상 여행을 떠나기란 쉽지 않다. 의지, 시간, 비용이라는 여행 삼박자가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삼박자를 맞추기 위해 오래전부터 준비한 가족여행이 있었다. 결혼할 때 변변한 신혼여행을 다녀오지 못하면서 형편이 좀 나아지면 해외여행이라도 다녀오자고 했으니 의지는 충분했다. 품 안의 자식이라 했는데 아들이 군대에 가기 전 방학쯤으로 날짜를 잡았으니 시간도 적절했다. 그 여행을 위해 생활비를 아끼며 적금을 들고 비용도 마련했다.
이렇게 여행 삼박자를 갖추었는데 막상 여행 날짜가 다가오자 코로나19가 퍼지기 시작했다. 여행을 취소하려고 해도 위약금 부담이 컸다. 어렵게 잡은 일정을 다시 잡기도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고심 끝에 계획대로 여행길에 나섰다.
10일 동안 서유럽 4개국을 찾아다니는 패키지여행 일정은 빡빡했다. 그 일정 가운데 짬을 내서 이동 중에 차 안에서 일을 해야 했다. 몸은 떠나왔지만 일은 여전히 한국에 남아 있는 것들이 많았으니 어쩔 수 없었다.
그 일들을 마치고 접하는 한국 소식은 여전히 시끄러웠다. 비례정당이 만들어졌다. 기존정당의 이합집산으로 하루아침에 정당이 만들어졌다. 실천교육교사모임은 시행령이 없어서 교원단체로 등록도 못 하고 있는데 정당은 이렇게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걸 보며 허탈하기까지 했다.
진정 국면을 보이던 코로나19 감염 확진자 숫자가 다시 늘어나며 우려가 커지고 있었다. 보석 중이던 전직 대통령이 2심에서 법정구속되기도 했다.
여행 기간만큼이라도 이 시끄러운 것들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싶었다. 그렇게 익숙한 것들에 의도적으로 눈을 감자 새로운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영국에서는 의회민주주의의 태동 과정을, 프랑스에서는 혁명의 빛과 그림자를 보았다. 스위스에서는 자연의 위대함을, 이탈리아에서는 사람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었다.
같은 직종에 있는 아내는 베네치아에서 수업자료로 쓰겠다며 가면을 몇 개 샀다. 그 가면을 들고 세계 여러 나라를 주제로 수업할 때 요긴한 자료가 될 거라며 기뻐했다. 이제 이 여행도 막바지다. 빡빡했지만 잔잔했던 일상을 접고 다시 익숙했던 것들을 만나러 가야 한다. 그렇게 만나는 것들은 이전과는 또 다를 것이다. 그 기대로 학교로 돌아가 아이들을 만날 준비를 한다.
이렇듯 교사에게 여행이란 익숙한 것들과의 적당한 거리 둠, 새로운 것들과의 만남,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기 위한 몸부림이다. 몸만 부리는 게 아니라 마음도 부린다. 이 부림에 힘입어 다시 아이들을 만날 새 둥지를 짓는다.
이런 여행인데 교사들이 방학 기간에 견문을 넓히는 여행에 곱지 않은 시선이 많다. 심지어 네팔로 교육봉사활동을 떠난 교사들이 눈사태를 만나 생사마저 확인되지 않을 때에 비난과 조롱을 퍼붓는 이도 많았다. 융프라우에서 만년설을 보며 잠시나마 선생님들을 생각했다. 비록 안나푸르나와는 먼 곳에 있더라도 이렇게 생각하는 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이 덜 서럽고 외로울 것 같았다.
투표는 특정정당을 빼고 할 수도 있고 그렇게 하자고 부추길 수도 있다. 하지만 교육은 한 아이도 빼고 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그래서 말한다. 교육은 온갖 논리로 간섭하다가 선거 때만 되면 평소에 가지 않던 전통시장에 가서 어묵 들고 사진 찍기 바쁜 정치인들과 그들이 몸담고 있는 정당엔 관심도 두지 말자. 대신 우리들의 삶이 아름다워지도록 여행은 더하고 살자.
정성식 실천교육교사모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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