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2월 제주 구좌면 월정리 큰당에서 신과세당굿 제비잡기. 눈빛출판사 제공 ©김동희

머리와 가슴을 동여맨 무녀 주위로 사람들이 삼삼오오 둘러앉아 있다. 굿판이다. 흑백 사진은 소리와 색채에 현혹되기 쉬운 굿판에 소리와 색을 지워버리지만, 덕분에 오히려 명암이 짙어지며 사람들의 표정, 몸짓, 얼룩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한과 신명이 한데 섞인, 한국인의 얼굴이다.

사진은 1982년 2월 제주 구좌면 월정리 큰당에서 신과세당굿 제비잡기 무녀인 고춘자와 그를 구경하려 굿당에 모인 사람들 모습이다. 제주에서는 대한과 입춘 사이를 ‘신구간(新舊間)’이라 부른다. 신들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가 재편성되는 기간이다. 새해가 되면 산 사람에게 세배를 하듯, 신들에게도 지난해의 감사와 새해의 행운을 빌기 위해 제물을 차리고 굿을 한다.

사진가 김동희는 1970,80년대 전국 곳곳의 굿판을 찾아 돌아다니며 이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당시만 해도 무속은 미신이요, 그렇기에 경멸과 멸시와 타파의 대상이었다. 김동희는 민속학적이거나 인류학적인 접근을 통해 이들에 대한 재해석을 시도하는 건 아니다. 다만 굿당의 생생한 풍경을 있는 그대로 찍어둠으로써, 굿판에 모인 사람들의 ‘기원’과 무속인의 ‘엑스터시’를 기록해둔다. 이렇게 모인 100여 점의 사진은 1980년대 초 전시와 출판으로 한차례 공개됐다가, 37년 만에 다시 책 ‘기원’(눈빛출판사)으로 엮였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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