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편 물량 16년 사이 35% 줄고 우체통도 20년 동안 70% 감소
느린 우체통, 소망 우체통…민간·지자체의 우체통 살리기 프로젝트 등장
마지막으로 손편지를 써본 게 언제던가. 이메일과 문자, 카카오톡 등으로 단 몇 초 만에 소통하는 시대. 꾹꾹 눌러 쓴 편지를 빨간 우체통에 넣고 답장을 기다리는 일은 이제 대부분의 이들에게 추억이 됐다. 우체국을 통해 주고 받는 우편물의 수도 2002년 55억 통에서 지난해 36억 통으로 줄었다. 그 사이 우체통도 사라지고 있다. 1999년 4만895개이던 우체통의 수는 꾸준히 감소해 2019년 1만1,800여개로 20년새 약 70%가 감소했다. 인구 1만 명당 우체통 보급 수 역시 1999년 8.6개에서 2018년 2.4개가 됐다.
서울 중구 일대에서 우편물을 배달하는 집배원 김영삼(47) 씨가 18일 오후 열어 본 회현동 우편취급국 앞 우체통에서 나온 우편물은 달랑 10통. 그 중 9통은 중구 소재 근로복지공단에서 보내는 고지서. 나머지 한 통 역시 민간기업에서 고객에게 보내는 우편물이었다.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또 다른 우체통에서 나온 우편물은 겨우 3통. 하루에 한 번씩 중구 일대 우체통 5개를 수거하는 김 집배원은 김 씨는 “(우편물이) 많이 나올 때는 수십 통이 넘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카드사, 은행, 백화점 등에서 고객에게 보내는 발송물이다. 손 편지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나마 명동은 관광지다 보니 외국 여행객들이 고국으로 보내는 영어로 쓴 엽서가 가끔 눈에 띈다. 집배원 일을 시작한 15여년 전에도 이미 손 편지는 자주 보지 못했지만 지금은 그때보다도 훨씬 많이 준 것 같다”고 덧붙였다.
편지가 줄어든 우체통을 쓰레기가 채우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날 찾은 서울역 앞 우체통을 열자 광고 전단지와 아이스크림 껍질 등이 나왔다. 담배꽁초가 나오기도 한다. 김씨는 “우편물이 훼손되는 경우도 많다. 담뱃불 때문에 우편물에 구멍이 나서 발송업체를 찾아가 다시 보내라고 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우체통을 유지 보수하는 데에도 비용이 들다 보니 우체통의 쓰임새가 줄게 되면 우정사업본부는 어쩔 수 없이 우체통을 철거하는 수밖에 없다. 각 지방 우정청을 통해 수요 조사를 한 다음 수거되는 우편물의 양이 적으면 우체통을 차례로 줄여 나간다. 우정본부 관계자는 “우체통에 안내문을 붙여 사전 고지를 한 다음 2,3주 동안 이의제기가 없는 경우에 철거 작업에 들어간다”며 “철거한 우체통 중 상태가 좋지 않으면 폐기하고 그나마 양호한 것은 페인트칠을 하는 등 보수 작업을 거쳐 우체국에 보관하다 신도시처럼 우체통이 필요한 곳이 생기면 설치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우체통에 손편지를 넣으면 직접 그린 엽서가 도착합니다
사라져가는 우체통을 지키려는 이도 등장했다. ‘우체통 살리기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박대수(37)씨가 그 주인공이다. 박씨는 2014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자신의 주소를 올려 편지를 보내달라는 글을 올렸다. 그에게 직접 쓴 손편지를 우체통을 넣어 보내면 페인팅 작가가 본업인 그가 직접 엽서를 그려 답장으로 보낸다. 처음에는 일주일에 한 통이 겨우 왔지만 이제는 참여하는 이들도 늘어나 최소 5, 6통을 받는다. 그는 6년 동안 우체통이 그려진 수백 통의 엽서를 답장으로 보냈다.
박씨는 프로젝트 전부터 우체통을 소재로 그림을 그렸다. 할아버지와 편지를 주고 받던 기억에 우체통에 애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우체통이 사라진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는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일정 기간 동안 편지가 없으면 우체통이 철거되기에 모르는 이들과 손편지를 주고 받으며 우체통을 살려보고자 한 것이다. 그는 “우체통을 통해 손편지를 기다리는 그 감성이 잊혀져 가는 게 아쉬웠다”며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과거의 감성을 잊지 않게 하는 프로젝트”라고 말했다.
‘우체통 살리기 프로젝트’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그의 프로젝트에는 손편지에 익숙한 50, 60대는 물론 우체통을 모르는 유치원, 초등학생 아이들까지 등장했다. 50, 60대는 옛 추억으로, 아이들은 우체통이라는 것을 알게 된 기쁨으로 프로젝트에 동참했다. 취업, 입시 등 일상의 고민을 담은 20, 30대의 이야기들이 도착했다. 어린 아이들이 보낸 “작가님, 우체통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내용이 담긴 삐뚤빼뚤 한 그림 일기는 그에게 감동을 줬다.
편지에 적힌 주소지도 다양하다. 전국 각지에서 오는 것은 물론 해외에서 오기도 한다. 여행을 갔던 사람이 박씨가 생각났다며 편지를 보내기도 하고, 미국, 유럽, 인도네시아, 쿠웨이트 전세계에서 편지가 오기도 한다. 그는 “모르는 이에게 편지를 보내기에 더 솔직한 이야기할 수 있어 많은 분들이 편지를 보내주는 것 같다”며 “정성이 들어간 손편지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감동적”이라고 전했다.
박씨는 단절된 사회이기에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편지와 우체통이 사라져서는 안 된다고 얘기했다. 박씨는 “편지 한 통에 담으려던 이야기는 물론 감정과 성격까지 사람에 대한 모든 게 들어가기 때문에 작업실에 혼자 있다가도 편지를 받으면 누군가와 함께 있는 기분이 된다”며 “많은 사람들이 우체통으로 편지를 주고 받으며 이런 기분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년 뒤 도착하는 느린 우체통… 전국 곳곳에 개성 넘치는 우체통 등장
한편 이색적인 우체통도 등장했다. 모인 우편물을 빠르게 전달하는 전통적 역할을 하는 빨간 우체통은 줄고 있지만 이 색다른 우체통들은 전국적 인기를 얻으며 지역의 관광 상품 역할까지 톡톡히 하고 있다.
전국 곳곳에 위치한 ‘느린 우체통’이 대표적이다. 우체통마다 다르지만 느린 우체통에 편지를 넣으면 6개월~1년 후 도착한다. 느린 우체통이 처음 등장한 것은 2005년 10월 경기 포천시에서 열린 명성산 억새꽃 축제에서다. 당시 ‘1년 후에 받는 편지’라는 이름으로 기획된 프로그램은 축제 기간 동안 방문객들에게 엽서를 나눠주고 우체통에 넣은 엽서를 약 1년간 보관하다가 포천시에서 우체국에 접수하도록 했다. 편지를 썼다는 사실조차 잊을 즈음 편지를 받아볼 수 있게 한 것이다. 억새꽃 축제 관계자는 “푸른 억새가 갈색으로 익어가는 한 해를 추억하는 의미에서 1년이라는 시간을 강조해 기획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 아이디어가 큰 호응을 얻자 이후 전국적으로 퍼졌다. 지방자치단체나 민간 단체가 비슷한 사업을 시작해 현재는 전국에 283개의 ‘느린 우체통’이 설치돼 있다. 그 가운데서도 특색이 담긴 우체통은 전국적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전남 해남군 땅끝마을에 위치한 한반도 모양의 느린 우체통이나, 충남 공주 한옥마을에 있는 기와 모양의 느린 우체통이 대표적이다. 울산 간절곶에는 느린 우체통 옆에 높이 5m, 무게 7톤에 이르는 대형 우체통인 ‘소망 우체통’이 함께 설치돼 느린 우체통과 함께 관광 명소로 자리잡았다. 우정사업본부는 2011년부터 우정문화 활성화를 위해 원하는 지자체나 단체를 상대로 설치비용 50만원을 지원하고 엽서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이 외에도 경기 파주에 있는 ‘이산가족 우체통’은 이산가족이나 실향민이 통일 염원이나 가족의 사연 등을 엽서에 작성해 넣도록 했다. 파주시는 이를 모아 6ㆍ25기념행사나 광복절 특별행사 때 전시를 할 계획이다. 전국 5곳 현충원 및 호국원에는 호국 영령에게 쓴 편지를 보관하는 ‘하늘나라 우체통’이 있다.
이미령 인턴기자
정해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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