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 절차 거친대도 거부 어려워
“오빠는 전화를 하면 회사 홍보 멘트가 나오네. 애사심이 대단하다.”
한 증권사 입사에 성공한 김모(31)씨는 얼마 전 친한 동생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휴대폰 통화연결음이 “주식 누구랑 하세요? 당신의 투자를 위해 OO증권”으로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자기 휴대폰에 전화를 걸 일이 없으니 누가 먼저 말해주기 전까지는 전혀 몰랐다. 회사에 어떻게 된 일이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신입사원 입장에서 어떤 불이익을 받을지 몰라 마음을 접었다. 김씨는 “동의를 한 기억이 없는데 나도 모르게 통화연결음이 변경됐다”며 “굳이 어느 회사에 다니는지 알리고 싶지 않은데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젊은 직장인들 사이에서 사적 영역인 휴대폰 통화연결음 서비스 ‘비즈링(biz-ring)’을 24시간 회사의 홍보 수단으로 이용한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휴식 시간에 업무와 철저히 단절돼야 하는 노동자의 ‘연결되지 않을 권리(Right to Disconnect)’ 침해라는 비판도 적지 않다.
19일 통신업계에 따르면 비즈링은 홍보용 CM송이나 광고 멘트를 휴대폰에 설정해 전화를 건 사람이 통화 연결 전까지 들을 수 있도록 한 부가서비스다. 1인당 2,000~4,000원의 비교적 저렴한 금액으로 불특정 다수에게 홍보가 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영업직이 많은 금융권이나 유통업계에서 많이 이용된다. 문제는 법인 명의나 업무용으로 지급된 휴대폰이 아닌 개인 휴대폰에까지 비즈링을 설정하도록 강요하는 경우다.
비즈링은 통신사 부가상품이라 개인정보 활용 및 서비스 이용 동의 여부가 필수다. 권고 형태로 개인정보 활용 동의를 받고 있다지만 직원 입장에서는 거부하기가 쉽지 않아 반강제로 가입하는 것이나 다를 게 없다. 한 시중 은행에 근무하는 최모(27)씨는 “얼마 전 회사에서 새로운 금융서비스를 홍보하는 비즈링에 참여하라는 방침이 내려왔는데 거절했다”며 “상사들은 별 것도 아닌데 요즘 애들은 왜 유난을 떠냐는 식으로 반응해 어이가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공무원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각종 정책 캠페인이나 지역 행사 홍보를 해야 하는 공공기관과 지방자치단체들은 비즈링을 광범위하게 사용한다. 지역 주민이나 공무원들에게 비즈링 참여를 유도하고 서비스 비용을 부담하게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업무용이 아닌 개인 휴대폰까지 홍보에 동원하는 것은 분명한 사생활 침해”라고 강조했다.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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