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세르비아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최종예선을 마치고 지난 11일 귀국한 박지수. 연합뉴스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 갈망했던 ‘1승’을 거뒀는데 여론은 싸늘했다. 12년 만의 올림픽 본선 진출에 성공하고 돌아오는 길은 애초 상상했던 ‘금의환향’과는 거리가 멀었다.

여자농구 대표팀 이야기다. 이달 초 세르비아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최종 예선에 참가한 여자농구는 ‘선수 혹사 논란’이 불거지면서 십자 포화를 맞았다. 박지수(KB스타즈)의 작심 발언이 기름을 부었다. 환영 인파 대신 ‘취조 현장’으로 둔갑한 귀국길에 박지수는 “이번 대회에서 문제가 있었던 것은 다들 아실 것이다. 1승을 목표로 하긴 했지만 프로팀이 아닌 대표팀이기 때문에 12명 모두 충분한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부분이 아쉽다”며 감독의 운영을 에둘러 비판했다. 게다가 바로 앞서 “혹사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 감독의 인터뷰가 끝난 직후라 ‘정면 반박’으로 비쳤다.

스포츠 세계에서 감독과 선수는 갑과 을이다. 선수 기용의 전권을 쥐고 있는 감독에게 밉보일 언행을 어지간한 선수는 엄두도 낼 수 없다. 박지수는 며칠 후 “감독님과 불화는 없었다”며 진화에 나섰다. 올림픽을 불과 5개월 남겨 둔 시점에서 감독 교체는 득보다 실이 많다는 지적도 나왔다.

그럼에도 대한민국농구협회는 대표팀 귀국 일주일 만에 감독의 재계약 불가를 결정했다. 사실 박지수의 발언은 감독보다는 협회를 겨냥한 것이었다. 여자농구는 변변한 연습경기조차 치르지 못하고 대회에 나갔다. 박지수는 “이것까지 말하면 어이가 없긴 한데, 하루에 연습복이 딱 두 벌 나온다. 물론 소속팀 옷을 입어도 되지만, 대표팀 아닌가. 조금 아쉽다"라고 했다. 협회는 표면적으로 ‘무능한’ 감독을 교체했지만 ‘더 무능한’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려 감독을 희생양 삼은 모양새다.

남자농구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대표팀 가드 허훈(KT)은 지난 14일 국제농구연맹(FIBA) 아시아컵 예선에 대비하기 위해 진천선수촌으로 소집되는 과정을 SNS에 공개했는데 키 207㎝의 김종규(DB)가 다리를 의자 밖으로 내밀고 앉아 가는 사진이 실소를 자아냈다. 허훈은 “진천 가는 버스…ㅎㅎ 마을버스 부릉부릉~~ㅋㅋ”라고 적었다. 기사화 됐고 엄청난 댓글이 달렸다. “일반 회사에서 놀러갈 때도, 고등학교 운동부에서도 저런 버스는 대절하지 않는다”는 농구팬들의 원성이 빗발쳤다.

박지수와 허훈은 한국농구의 간판으로 성장한 젊은 대들보들이다. 박지수는 농구대잔치 시절 명 센터였던 박상관의 딸, 허훈은 ‘농구대통령’ 허재의 아들이기도 하다.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농구계에서 20대 어린 선수가 감독과 협회의 운영에 대해 공개적으로 소신 발언을 하는 건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누군가 해야 할 말이라면 다른 선수가 하는 것보다 몇 배의 파급력이 있는 것도 분명하다. ‘배구여제’ 김연경은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때 협회의 부실 지원을 공론화했다. 은퇴하고 ‘유튜버’로 변신한 하승진은 ‘한국농구가 망해가는 이유’라는 영상을 게재해 폭발적 반응을 이끌었다. 그렇다고 협회가 그들의 의견을 반영해 드라마틱한 환골탈태를 하진 않았다. 도리어 뒤에선 간접적으로 선수들의 ‘입단속’을 하기에 바빴다. “이렇게 큰 이슈가 될 줄 몰랐다”면서도 “내가 얘기를 한다고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 같다. 다른 얘기를 하면 또 이슈가 될 것 같아 조심스럽다”는 허훈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조직의 환부를 조기에 도려내지 못하면 훗날 어떤 후폭풍이 몰아칠지 체육계를 강타한 ‘미투’ 때 여실히 드러났다. 모두가 침묵할 때 간절하게 변화를 호소하는 젊은 선수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최악의 침체기를 겪고 있는 남자농구와 국제무대에서 변방으로 밀린 여자농구라면 더 그렇다.

성환희 스포츠부 기자 hhsung@hankookilbo.com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