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정세균 국무총리와 회의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 조선시대 영의정을 일컬었던 이 호칭은 2인자의 위치를 잘 설명해 주는 매우 직관적인 별칭이다. 나라의 모든 관리를 통할하는 재상은 오직 왕에게만 책임을 다하면 되는 자리였다. 왕조시대의 권력 관계를 표현하는 이 말을 민주공화정을 채택하고 있는 오늘날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반드시 적절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국무총리는 여전히 일인지하 만인지상으로 불리곤 한다. 대통령 궐위 시에 권한을 대행하고 국무회의 부의장으로 회의를 주재하며 국무위원 임명제청권과 해임건의권을 가진 국무총리는 명실상부한 국정의 2인자다.

이 중차대한 직에 전직 국회의장이 임명됐다. 국가를 이루는 세 개의 축 중 하나인 입법부의 직전 수장이 견제와 균형의 카운터파트인 대통령을 보좌하러 간다는 데 많은 우려가 있었다. 삼권분립 정신 훼손이라는 비판에 ‘입법부 수장을 지내신 분을 국무총리로 모시는 데 주저함이 있었다’고 인정하면서도 국회법 29조가 의원의 국무총리 또는 국무위원 직 겸직을 허용한다며 임명을 강행했다. 사실 현역의원의 국무총리 임명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현 대표와 한명숙 전 총리가 참여정부 시절 의원임기 중 국무총리직을 수행했고, 이완구 전 총리는 박근혜 대통령에 의해 현역 의원 신분으로 국무총리에 임명됐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우리가 짚어 봐야 할 것은 제도의 허용 범위가 헌법정신과 반드시 부합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하나는 지역대표로 선출된 국회의원이 행정부의 2인자를 겸직하는 데 따르는 의정활동의 공백이다. 총리가 대통령을 보좌하고 행정부를 통할하기도 벅찰 텐데 과연 지역구민의 현안과 민생을 어떻게 세심하게 돌볼 수 있을 것인가? 다른 하나는 적절한 긴장관계를 유지해야 할 의회의 구성원이 행정부 수장인 대통령의 지휘 하에 놓이게 되는 데 따르는 삼권분립 정신의 훼손이다. 유신이란 명분으로 본격적인 독재의 길로 들어선 3선 개헌 때부터 국회의원의 국무위원 겸직이 가능해졌다는 점에서 해당 조항은 행정권력의 독주로 그 취지가 읽히기도 한다.

한데 민주화나 민주주의가 성숙한 작금에 공직의 무게를 정말 무겁게 생각했다면 총리직을 제안함이나 수락함에 있어 신중함이 태산 같았어야 한다. ‘국민에게 봉사하는 민주사회의 공직자로서 바른 가치관’과 불가피하게 총리직을 수락한 후에 의원직을 사퇴하지 않은 것은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여타의 논리를 배제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해도 지역구 국회의원의 신분을 유지하는 것에 대해 지역민과 행정부를 건강하게 견제하고 감시하고자 불철주야 애쓰는 동료 의원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이를 시정하려는 방향으로 뜻을 모아도 모자랄 판에 이러한 현상이 바람직한가? 더군다나 이번 총리는 입법부의 직전 대표로 그 상징성이 여타 의원들과 비할 바가 아니다.

이러한 처신은 공직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와 존중을 가볍게 만든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장관이든 국회의원이든 어느 것 하나 쉬운 자리가 아니다. 이들이 내리는 사소한 결정이 수백, 수천만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이왕 맡으려면 진인사(盡人事) 위국보민(爲國保民)의 자세로 덤벼들어야 한다. 국무총리라는 중차대한 직을 맡으면서 현역 의원 신분을 유지하는 모습은 자칫 의원직에 미련을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직의원이 국무총리 비서실장으로 가면서 의원직을 사퇴한 것은 또 어떻게 보일까? 하기야 수석에 장관까지 지낸 분이 교수직 유지 논란에 강남빌딩 얘기까지 나오는 판이니 어느새 공직이 봉사의 길보단, 다른 무엇(?)의 가치 보다 가볍게 된 건 아닌가 싶다. 공직자의 가치는 과연 세태에 따라 무게가 달라질 수 있을까? 국민의 마음에 비치는 상(像)은 어떨까?

이근면 전 인사혁신처장ㆍ성균관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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