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남산의 부장들’ 원작자 김충식 가천대 부총장
'남산의 부장들' 저자 김충식 가천대 부총장. 김충식 제공

“인간이 권력 가까이에 다가갈수록 ‘설계 오류’의 결함이 치명적으로 드러난다. 태양을 향해 날아오르다 날개가 녹아서 추락하는 이카로스의 새처럼.”

지난달 하순 개봉한 ‘남산의 부장들’의 원작자 김충식(66) 가천대 부총장은 영화가 흥행한 소감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지난 13일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만난 그는 1990년 8월부터 2년2개월간 ‘남산의 부장들’을 신문에 연재한 데 대해 “역사의 중첩된 교훈은, 권력이 허무하게 명멸해 온 과거 속에서 그 가르침을 얻지 못했다는 것”이라고 나름의 결론을 밝혔다.

동아일보 기자 시절 연재물의 집합체인 이 책은 800페이지가 넘는다. 박정희와 김종필로 대표되는 5·16 쿠데타 주도세력이 1961년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때부터,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암살 사건(10월26일) 후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가 권력공백을 접수하는 시기까지 중앙정보부 비화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었다. 책과 달리 영화는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성으로 박정희 정권의 18년 집권이 무너지는 10ㆍ26사건 이전 40일간을 다뤘다. 최고권력의 총애를 받으려는 2인자들의 경쟁과 암투, 배신을 김규평(이병헌 분) 중정부장의 내면에 맞춰 섬세하게 묘사했다.

그가 책에서 가장 파헤치고 싶었던 건 인간과 권력의 관계였다. 그는 “불나방처럼 권력으로 뛰어들어 오류를 되풀이하는 모습이 인간의 본성”이라며 “역사를 통해 실패의 경험을 배우면서도 깨닫지 못하는 걸 보면 희한하다”고 안타까워했다.

책 '남산의 부장들'에 실린 김종필(왼쪽) 초대 중앙정보부장과 김재춘 3대 중앙정보부장의 사진. 1963년 2월 ‘자의 반 타의 반’외유를 떠나는 김종필을 뒤따르는 김재춘 모습이다. 우민호 감독은 이 사진을 보고 2016년 김충식씨에게 연락해 “누아르 영화를 찍겠다”고 말했다.

책을 쓴 이유가 궁금했다. “박정희 대통령 집권 기간 입법ㆍ사법ㆍ행정ㆍ언론 4부 위에서 군림한 중앙정보부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후대를 위해 기록해놔야 한다는 언론인으로서의 부채의식이 있었다”고 했다. 그는 “중정은 지금으로 치면 검찰, 청와대 민정, 경찰, 군대를 통할한, 박정희 정권을 위해 헌신한 초헌법적 기관”이라고 규정했다.

연재 과정에서 고비도 없지 않았다. ‘전두환 노태우 청년장교들의 쿠데타 음모(1963년)’라는 수사기록을 발굴해 보도했을 당시는 노태우 대통령 재임 때였다. 청와대가 대통령 모독이자 수사기록 유출이라며 그를 구속시키고 연재를 중단시키려고 했다고 한다. 다행히 “일부 참모들이 국제적인 망신만 되고 시끄러울 뿐 이기지도 못 한다고 건의해 화를 모면했다”고 김 부총장은 비화를 들려줬다.

영화 마지막에 김규평이 대통령 암살 후 중정 본거지인 남산으로 가지 않고 용산 육군본부로 차를 돌리면서 영화는 끝난다. 김재규가 정승화 육군참모총장과 함께 남산으로 직행해 군을 지휘했다면 역사가 바뀌었을까.

그는 고개를 젓는다. “김재규의 중정 세력과 군부간 2, 3일 엎치락뒤치락은 있었을지 몰라도 결론은 군부의 승리였을 것”라고 단언했다. 김재규의 ‘우발적이고 사소한 계획’에 의한 대통령 시해라고 본다면, 김재규가 한마디 한다고 군이 입장을 돌릴 상황이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김 부총장은 1980년 신군부가 아닌 민간정부가 섰다면 김재규가 사형은 면했을 것으로 가정했다. “유신체제 종말에 김재규의 공로가 30% 정도는 됐다”며 “민주화 정당성의 훼손을 막는 측면에서 김재규를 사형에 처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상상했다.

배성재 기자 pass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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