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완주고속도로 참사 현장감식
원인 블랙아이스 추정했지만 “사고 30여분전 제설작업 했다”
도로공사는 결빙 가능성 낮게 봐
사망 5명, 부상 43명으로 늘어나
18일 오전 전북 남원시 사매면 순천∼완주 간 고속도로 상행선(완주 방향) 사매2터널 앞. 검게 그을린 터널 입구에서부터 50m가량 떨어진 곳에 경찰 통제선이 설치돼 있었다. 통제선 넘어 보이는 터널 내부는 미처 치우지 못한 차량 잔해물과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시커멓게 탄 화물차량이 널브러져 있었다. 전기가 끊긴 터널 내부는 어둠 속에서 하얀 방제복을 입은 현장감식반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전날 발생한 순천완주고속도로 터널 31중 추돌 사고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 관계기관 합동 조사가 시작됐다. 이번 사고는 터널 내에 가스를 배출할 수 있는 환기시설이나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지 않아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매2터널은 길이가 712m에 불과해 스프링클러 등의 시설이 없다. 국토교통부의 도로ㆍ터널 방재시설 설치 관리 지침을 보면 1㎞ 미만의 터널의 경우 소화전 설비, 물 분무시설, 제연설비, 자동화재탐지설비 등은 의무 설치 대상이 아니다. 제도적 허점이 대형 참사로 이어졌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교통량이 많은 500m이상 1㎞이하의 터널에 관련 시설을 설치할 수 있지만 사매2터널은 소화기가 전부였다.
현장감식에는 경찰과 소방, 환경부, 남원시, 도로교통공단,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 유관기관이 투입됐다. 합동조사단은 사고가 난 도로의 구조와 상태를 파악하고 터널 내부에 안전장치를 갖췄는지 등을 조사 중이다.
사고 원인은 우선 블랙아이스(도로 결빙)로 추정되고 있다. 사매2터널 사고현장 CCTV에 터널 입구부터 추돌 차량들이 미끄러지는 현상이 포착됐다. 17일 낮 12시20분쯤 사매2터널 내부에서 1차로 트레일러와 화물트럭의 추돌사고가 발생했고, 뒤따라오던 승용차와 트럭 등 여러 대의 차량들이 미끄러지면서 멈추지 못했다. 이렇게 앞 차량을 잇달아 추돌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경미한 접촉 사고였다.
이후 사고현장은 아수라장이 된다. 뒤따라오던 질산 1만8,000ℓ를 실은 25톤 탱크로리가 넘어지면서 앞 차량들을 덮쳤다. 이 과정에서 탱크로리 쪽에서 불이 났다. 이어 뒤따르던 PVC 탱크로리와 곡물 트레일러가 연달아 추돌하면서 사고 충격으로 큰 불이 발생했고 다른 차량들로 번졌다. 터널 내부는 순식간에 시커먼 유독가스로 가득 찼다.
경찰은 결빙된 도로에서 안전 속도 및 거리 미확보 등을 사고 원인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화재 발생 경위 등은 아직 확인 중이다. 이를 위해 경찰은 현장에 남은 차량 일부에서 블랙박스를 확보하고 부상자와 사망자의 유류품 등을 수거했다. 화재 감식을 담당한 소방당국도 불이 난 탱크로리의 발화 패턴을 확인하고 불탄 차량의 파편 등을 확보했다.
전북경찰청 관계자는 “터널 인근 노면이 얼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에 도로공사 측은 경찰 입장과 달리 사고 발생 30여분 전인 17일 오전 11시56분쯤 사고 구간에 대한 제설작업이 이뤄져 도로 결빙 가능성이 낮다고 설명하고 있다. 감식 결과가 나와야 진위가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5명, 부상자는 43명이다. 사망자 3명의 신원은 아직 확인이 안 된 상태다. 경찰은 사망자 3명의 DNA를 채취해 가족과 대조하고 있다. 또 사고원인 제공자로 화물차량 운전자를 지목하고 조사를 진행 중이다. 사고 조사를 맡은 남원경찰서 관계자는 “사고 관련 자료를 확보하고 목격자 등을 상대로 조사해 원인을 규명하겠다”고 밝혔다.
남원=하태민 기자 hamong@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