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 7,520시간. 황선홍(52) 대전하나시티즌 감독이 사령탑으로 지낸 시간이다. ‘1만 시간’을 무려 11번째 채워가고 있는 황 감독은 거쳐온 팀만 5개에 리그 우승부터 팀 해체까지 감독으로서 단맛 쓴맛을 다 봤다. 그런 그가 2부 리그, 그것도 재창단 구단인 대전에서 새로운 시작을 선언했다.
17일 경남 남해 전지훈련지에서 만난 황 감독은 “그동안 ‘잘해야겠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며 “이젠 즐기려고 노력 중”이라고 했다. 이어 “정해진 틀에 선수들을 끼워 맞추려 하기 보다는, 선수 스스로 잘 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중요하다”며 “선수들을 융화시켜서 좋은 에너지를 끌어 내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했다. 이를 위해 황 감독은 젊은 선수들과 적극적으로 소통 중이다. 그는 “자유분방하고 자신감에 차있는 요즘 선수들의 모습이 보기 좋다”고 했다.
물론, 자식뻘인 선수들과 부대끼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고 했다. 황 감독은 “예전엔 감독이 다가가도 막상 선수들은 하고픈 이야기를 잘 하지 못했다”면서 “그런데 요즘은 의사 개진을 가감 없이 한다. 개인적으로 유튜브를 하는 선수들도 있다”면서 웃었다.
황 감독이 대전에 오기까지 과정은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부산과 포항에서 승승장구했지만, 서울에서는 성적 부진으로 지휘봉을 내려놓는 굴욕을 겪었다. 이후 중국 옌볜 푸더 감독으로 도전했으나 팀이 데뷔도 하기 전에 세금 미납 문제로 해체되면서 1년 동안 ‘강제 휴식기’를 갖기도 했다.
그리고 돌아온 2부리그 대전. 대전은 최근 시민구단에서 기업구단으로 재창단, 다양한 변화를 겪고 있다. 황 감독은 “2부리그를 경험한 감독들은 ‘예측불허인 곳’이라고 입을 모은다”면서 “기술적으로 완벽하지 않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이어 “화려한 플레이보다는 실리가 중요하다. 차근차근 팀에 색깔을 입힐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컴팩트 축구’를 강조했다. 휴식기간 동안 ‘축구 공부’에 열중했다는 황 감독은 “최근 점유율 축구가 쇠퇴하고 빠른 축구가 선행하는 추세”라며 “공ㆍ수가 컴팩트한 축구를 정착시키려 한다”고 했다. 외국인 선수도 적극 기용할 예정이다. 대전은 안드레 루이스, 바이오, 채프만 등 수준급 선수를 영입했다. 황 감독은 “외국인 선수들을 어떻게 극대화 시킬 지가 관건”이라며 “특히 안드레는 올시즌 활약이 기대된다”고 했다.
1부 리그로의 승격 부담도 솔직하게 털어놨다. 황 감독은 “승격 부담이 상상을 초월한다”며 “주변에선 ‘대전은 승격할 것’이라고 평가하지만 실제로는 상황이 만만치 않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완벽한 축구를 구현해 ‘축구특별시’라는 옛 명성을 찾는 일이 하루아침에 이뤄지진 않겠지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드릴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한편 이번 시즌엔 2002년 월드컵 당시 함께 그라운드를 누볐던 동료들과의 경쟁도 눈길을 끈다. 성남에는 김남일(43) 감독이, 경남에는 설기현(41) 감독이 사령탑 인생을 시작했다. 그는 “두 감독은 의욕도 있고 젊은 감각도 갖췄다”면서 경계했다. 그러면서도 “다양한 경험을 통해 시행착오를 겪은 만큼 그들보다 조금은 유리할 것”이라며 “나를 잘 아는 적(?)들이 많아졌지만 오히려 자극제가 된다”고 했다. 이어 “이번 시즌 대전의 활약상을 지켜봐 달라”고 당부도 잊지 않았다.
남해=오지혜 기자 5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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