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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DVDㆍ블루레이 마니아 봉준호에 대한 단상

입력
2020.02.19 04:3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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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한국일보]봉준호 감독이 지난 16일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봉준호 감독이 지난 16일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2003년에 봉준호 감독을 만난 적이 있다. 당시 그는 영화 ‘살인의 추억’ 종영 후 세 번째 작품 ‘괴물’의 시나리오를 쓰고 있을 때였다. 보통 영화담당 기자들은 개봉 전이나 상영 중일 때 감독을 만나고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상영이 끝난 뒤에 인터뷰를 잘 하지 않는다. 그때 봉 감독을 따로 만난 것은 ‘살인의 추억’ DVD 타이틀이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봉 감독도 DVD 타이틀 때문에 인터뷰 하자는 흔치 않은 제안이 재미있었는지 흔쾌히 응했다.

봉 감독은 대단한 DVD 및 블루레이 애호가다. 그는 영화 ‘장화 홍련’을 만든 김지운 감독 소개로 입문한 뒤 열심히 DVD와 블루레이 타이틀을 구입했다. 국내에서 구하기 힘든 타이틀은 해외 인터넷 쇼핑몰에서 샀고 해외에 나가면 DVD 판매점에 꼭 들러 블루레이 타이틀을 한아름씩 구입했다.

영화 애호가들이나 종사자들에게 DVD와 블루레이 타이틀은 정보의 보고다. 타이틀에는 영화뿐 아니라 감독과 배우들의 음성해설, 제작과정 등 알찬 정보가 함께 들어있다. 봉 감독은 이를 통해 좋아하는 감독들이 어떻게 영화를 만들었는지 열심히 공부했다.

봉 감독은 자신의 작품 타이틀에도 ‘친절한 준호씨’ 특유의 알찬 해설을 담았다. ‘봉테일’은 영화뿐 아니라 사전에 세심하게 준비하는 타이틀에서도 빛을 발한다. 타이틀에 들어 있는 그의 해설은 마치 한 편의 재미있는 강의 같다.

외국은 DVD와 블루레이를 중요한 콘텐츠 산업으로 본다. 극장에서 흥행에 실패해도 타이틀을 많이 판매해 수익을 올리는 작품들이 많다. 할리우드에서는 고전 영화까지 블루레이를 넘어선 고화질 4K 타이틀로 열심히 내놓고 있다.

블루레이와 4K의 활용을 통해 영화보다 더 많은 수익을 올리고 콘텐츠를 적극 전파하는 것이다. 블루레이와 4K 타이틀은 용량이 풍부해 수십 개 언어 자막을 넣을 수 있다. 봉 감독이 말한 ‘1인치 자막’의 한계를 가장 쉽게 넘을 수 있는 미디어다.

그런 점에서 블루레이와 DVD 활성화를 위한 정책적 배려가 필요한데 그렇지 못해 안타깝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세청은 2018년 7월부터 연간 총 급여 7,000만원 이하인 사람의 도서 구입 및 공연 관람비에 대해 최대 100만원까지 30% 소득 공제를 해준다. 그런데 여기에 DVD, 블루레이, 4K 타이틀 구입비는 빠져 있다. 문체부에 이유를 물어봤으나 “공연법 등을 기준으로 해서 그렇다”며 뉴미디어 콘텐츠의 배제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사실 DVD와 블루레이 구입비의 소득 공제는 사소한 정책일 수 있으나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국내 관련 시장이 아주 작기 때문이다. 관련 업계에서는 국내에서 많이 팔리는 블루레이의 판매 수량을 작품당 1,500장으로 본다. 영화진흥위원회가 13일 발표한 ‘2019 한국영화산업 결산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2조5,093억원인 영화산업에서 디지털 매출이 5,093억원으로 전체 매출의 20.3%를 차지했다. 이 가운데 DVD와 블루레이 매출은 104억원으로 디지털 시장의 2% 규모다. 그만큼 갈 길이 멀다.

오히려 해외에서 우리 DVD와 블루레이에 관심이 더 많다. 봉 감독도 좋아하는 미국의 유명 블루레이 제작사 크라이테리언에서 ‘살인의 추억’을 블루레이 시리즈로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봉 감독이 최고의 우리 영화로 꼽은 1960년대 김기영 감독의 ‘하녀’를 블루레이로 출시할 수 있도록 깨끗한 화질로 복원한 것도 미국의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후원했다. 그러니 봉 감독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사와 존경을 표할 만하다.

산업 육성은 정부가 억지로 시장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 도움될 만한 배려를 정책화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소비를 촉진하고 관련 산업이 발달한다면 정부는 제 할 일을 하는 것이다. 봉 감독의 아카데미상 수상을 계기로 그런 정책적 배려가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최연진 IT전문기자 wolfpa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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