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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석의 우충좌돌] 겸손한 표정의 권위주의라니

입력
2020.02.18 18:00
수정
2020.02.18 18:19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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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겸손하고 진보라는 믿음이

권위주의를 막기는커녕 조장했다

겸손하다면서 정파적이고 정략적이다

자신과 싸우지는 않는 자칭 진보정권은 보수와 싸우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열성적 당파성과 정략적 이벤트에 과도하게 의존한다. 겸손하다는 정권이 실제론 정파적 폐쇄주의와 정략적 프로파간다에 빠진다. 겸손하다면서 매우 정파적이고 정략적이라니, 놀랍고 안타깝다. 사진은 청와대 본관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자신과 싸우지는 않는 자칭 진보정권은 보수와 싸우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열성적 당파성과 정략적 이벤트에 과도하게 의존한다. 겸손하다는 정권이 실제론 정파적 폐쇄주의와 정략적 프로파간다에 빠진다. 겸손하다면서 매우 정파적이고 정략적이라니, 놀랍고 안타깝다. 사진은 청와대 본관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지난 칼럼에서 나는 현 정권이 보수가 비난하는 것처럼 독재는 아니지만, 오만과 무능에 빠져 있다고 썼다. 이 주제를 한 번 더 다뤄보자. 독재는 아니고 전체주의도 아니지만 오만에 빠진 정부를 뭐라 부를까? 오만한 권위주의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선거 개입 혐의로 청와대 비서관들 13명이 기소된 것만 해도 이미 정치적으로 심각한 일인데, 추미애 법무부장관은 과도하게 검찰 수사를 방해하고 있다. 공소장을 공개하는 게 맞느냐 아니냐는 물음은 지금 핵심이 아니다. 미국은 공개하는 편인데 반해 독일은 그렇게 하지 않듯이, 시스템은 서로 다르다. 다만 국내에서는 이제까지 공개하는 게 관행이었다. 정부가 추진한 적폐 청산 과정에서도 공소장은 두꺼웠고 공개됐었다. 그런데 갑자기 공개하지 않는다?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국민을 쪼개고 싸우게 한 정부가, 아직도 그 연장선에서 정략을 꾸민다는 의심을 받을 만하다. 거기다 민주당은 비판적인 칼럼을 쓴 임미리 교수와 언론사를 고소했다가 취소하면서 사과도 하지 않았으니, 얼마나 오만한가. 또 조국 사태에서 소신껏 비판의 목소리를 낸 금태섭의원의 지역구에 정략적으로 조국 지지자를 내보내, 조국 사태를 뻔뻔스럽게 총선까지 연장하고 있다. 잘못을 전혀 인정하지 않으면서 자기 변호만 반복하는 게 오만한 권위주의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출범 초기만 해도 정부는 탈권위주의로 대중의 지지를 얻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사람들은 대통령의 겸손한 표정과 태도를 탈권위주의로 믿었다. 대통령도 그렇게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개인적 겸손이 정권의 탈권위주의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아니, 겸손한 태도와 정권의 운영은 별개의 것이다. 오히려 지금의 권위주의는 겸손에도 불구하고 실수로 생긴 것이 아니라, 겸손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경향 때문에 조장된 면이 크다. 겸손함을 내세우는 사람이 자신을 도덕적이라고 착각하듯이, 자신이 겸손하고 진보적이라고 믿는 정권은 자신의 권위주의를 인식하지 못하고 부인하기만 한다. 겸손한 표정의 진보적 권위주의라니!

어떻게 이런 일이? 자칭 진보 정권인데? 노무현 정부는 개혁을 내세웠지만, 결과적으론 실패했다. 이번 정부도 위기에 빠져들면서, 진보는 역사적 실패를 반복할 위험이 크다. 노무현 때는 그나마 보수의 방해가 컸지만, 이번엔 전혀 아니다. 국민 상당수는 촛불이 배반되었다고 여긴다. 자신과 싸우지는 않는 자칭 진보정권은 보수와 싸우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열성적 당파성과 정략적 이벤트에 과도하게 의존한다. 겸손하다는 정권이 실제론 정파적 폐쇄주의와 정략적 프로파간다에 빠진다. 겸손하다면서 매우 정파적이고 정략적이라니, 놀랍고 안타깝다.

물론 보수는 더 나쁜 권위주의에 사로잡혀 있다. 그래서 개혁도 하지 않은 보수가 다시 이기는 후폭풍이 분다면? 여기에도 정부 책임이 적잖다. 나는 보수는 아니다. 그러나 오만한 정권을 선거에서 심판하자는 보수의 주장이 틀린 건 아니라고 본다. 정부는 야당을 상대하는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한 채, 보수를 이기기만 하면 된다는 치졸한 전략과 정략에 의존했다. 어쨌든 대통령중심제가 유지되는 한, 보수와 진보는 웃으며 교대로 정권을 나눌 듯하다. 대통령권력에 붙어사는 기생충도 득시글할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정치가 한심해도 결국 정치를 통해 사회를 바꿔야 한다고. 아니다. 정치가 사회를 바꾸는 덴 한계가 있다. 민주주의를 위한 싸움은 필요하지만, 정치 과잉은 정파적이고 정략적인 패거리주의에 빠진다. 오히려 훌륭한 적을 가지는 게 좋다. 또 법·경제·교육·문화 등 기능 시스템으로 분화된 사회의 문제를 정치가 해결할 순 없다. 사회 각 영역은 오히려 정치로부터 자율성과 독립성을 확보해야 하며, 정치적 외압에서 벗어나야 한다. 물론 어려운 일이다. 실제론 사회 영역들도 쇼맨들의 인기몰이와 세력 싸움에 잠식당하고 있다. 세상의 갈등은 계속되고, 자신과의 싸움도 계속된다. 연재를 마친다.

김진석 인하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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